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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빨간 '변소간', 여기서 그러실 줄이야

[인천 동구의 박물관 추억 여행]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과 '배다리 성냥박물관'

등록 2021.06.23 19:10수정 2021.06.2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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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는 변신중  고층 아파트와 달동네의 공존. 동구는 한창 변신 중이다. 박물관에서 역사를 배운다.
동구는 변신중 고층 아파트와 달동네의 공존. 동구는 한창 변신 중이다. 박물관에서 역사를 배운다.이상구
   
동구는 인천의 관문이었다. 화수동이나 만석동엔 제법 규모 있는 항구가 들어섰다. 내륙 깊숙한 곳까지 바닷물이 흘러 들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나폴리 같은 수로의 도시였다. 섬에서 온 나룻배들이 온갖 해산물을 싣고 드나들었다. 배를 대는 곳을 중심으로 자연히 시장이 형성됐다. 중앙시장, 현대시장 등은 인천의 물류 중심지였다.

물길은 자주 넘쳐흘렀다. 만조 때나 비가 많이 오면 특히 그랬다. 사람들은 그런 불편을 막으려 모든 바닷길을 메워버렸다. 배다리, 수문통 등 지금은 지명에만 그 흔적이 남아있다. 당시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소 아쉽다. 수로에 배 띄우고 유유히 떠다니는 상상을 해보니 더 그렇다. 한때 이를 복원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지금은 잠잠하다.


오랜 역사만큼 도시는 쇠락했다. 시장마저 활기를 잃고 사람들은 속속 고향을 떠났다. 근자에 들어 재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산기슭 달동네를 밀어내고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전도관' 일대도 곧 재개발이 추진될 예정이다. 그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쨌든 동구는 지금 변신 중이다.

이 척박한 동네에 꽤 유명한 명물이 둘 있다. 둘 다 박물관이다. 박물관이라 하기엔 다소 규모는 작지만 그 의미는 깊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현대의 추억을 담고 있다. 그 중 하나는 50~60년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다른 하나는 그보다 조금 더 오래된 1930년대 인천의 산물(産物)을 전시하고 있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과 '배다리 성냥박물관' 이야기다.

두 박물관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걸음으로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거리다. 동구의 박물관 여행은 동인천역 2번 출구에서 출발한다. 출구를 빠져 나오면 북광장이 나타난다. 그 오른편으로는 속칭 양키시장이 있다. 그 옛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이 거래되던 곳이다. 70~80년대까지 흥청댔지만 지금은 흘러간 옛 얘기가 됐다.

수도국산이 달동네가 된 이유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야트막한 야산의 정상에 떠 있는 범선 모양의 박물관 이 주변을 개발하면서 수거한 물건들을 중심으로 전시해 놓았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야트막한 야산의 정상에 떠 있는 범선 모양의 박물관 이 주변을 개발하면서 수거한 물건들을 중심으로 전시해 놓았다.이상구
 
그 맞은편엔 송현시장이 있다.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지정돼 아케이드를 치고 내부도 잘 정비했다. 이 시장을 거쳐 LH아파트와 송림동 재개발 공사현장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야트막한 야산 정상에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 보인다. 그 모양이 커다란 범선처럼 생겼다. 2005년 개관 이래 지방에서도 원정 올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산의 원래 이름은 송림산이었다. 그 주변은 바다였다. 바다를 메워 놓고 보니 섬은 어느새 산이 됐다. 그 곳엔 소나무가 많았다. 지금도 나이깨나 들어 보이는 소나무가 많다. 이 산이 '수도국산'으로 바뀐 건 여기에 노량진으로부터 공급받은 수돗물을 보관하는 배수지가 있어서였다. 현재도 가동 중이다. 1900대 초의 일이다.
  
이 일대에 외국인 조계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둥지를 틀었다. 일제 강점기부터였다. 전쟁 통엔 피난민도 한편에 짐을 풀었고, 60~70년대 충청도에서 대거 올라온 사람들도 이곳에서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수도국산 달동네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때의 모습을 박물관에 오롯이 재현해 놓았다. 그 풍경은 70년대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2층 입구에 들어서면 동네의 전경이 보인다. 다닥다닥 붙은 지붕들, 꼬불꼬불한 골목길, 그곳을 비추는 노란색 가로등이 유난히 따스해 보인다. 2층엔 다방과 솜틀집 등을 복원해 놓았다. '세이버 스케이트', '세라 교복', '동전딱지' 등의 당시 소품들도 아기자기하게 전시해 놓았다. 신문지로 만든 벽지도 눈에 띈다. 모두 송림동 재개발 현장에서 수거한 것이라 한다.
 
달동네 부잣집 흑백 테레비에선 김일 선수의 레슬링 경기가 한창이다. 이 동네에서 가장 부잣집으로 추정된다.
달동네 부잣집흑백 테레비에선 김일 선수의 레슬링 경기가 한창이다. 이 동네에서 가장 부잣집으로 추정된다.이상구

2층 전시실을 둘러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본격적으로 40~50년 전 과거로 들어가게 된다. 제법 번듯한 집 한 채가 관람객을 맞는다. 그 동네 유지의 집인 모양이다. 한가족이 안방에 둘러 앉아 TV를 보고 있다. '흑백 테레비'에선 레슬링이 한창이다. 박치기왕 김일과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끼가 맞붙었던 전설의 경기다.
 
문제의 '변소간' 당시의 화장실도 재현해 놓았다. 개관 초기엔 실제 일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문제의 '변소간'당시의 화장실도 재현해 놓았다. 개관 초기엔 실제 일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이상구
 
골목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나도 모르게 '빵 터지는' 곳이 있다. 그땐 '변소간'이라 불렀던 푸세식 화장실이다. 물론 모형이다. 진짜 용변을 볼 수는 없다.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개관 초기엔 아이들이나 어르신들이 실제 화장실인 줄 알고 들어가 문을 잠그려 했단다. 미처 말리지 못하고 실례를 한 분들도 여럿이었다고 한다.

당신의 부엌과 한 칸짜리 삯월세 방, 구멍가게 등도 착실하게 재현해 놓았다. 마네킹이나 소품들이 다소 조악해 보이기도 하지만 박물관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 어찌 생각하면 부끄럽고 잊고 싶은 과거를 전시해 놓았지만 어른들은 추억에 젖고 아이들은 마냥 신기해 한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과거도 꽤 훌륭한 전시거리가 되는 셈이다.


성냥공장이 그곳에 있던 사연
 
배다리성냥마을 박물관  옛 동인천 우체국을 개조해 만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알차다. 의미도 있다.
배다리성냥마을 박물관 옛 동인천 우체국을 개조해 만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알차다. 의미도 있다. 이상구
 
배다리 끄트머리에 있는 성냥 박물관은 예전 '동인천 우체국' 건물에 들여 놓았다. 왕년의 우체국이라지만 크기는 정말 작다. 전체 연면적이 '겨우' 213㎥다. 그렇게 덩치는 작아도 내용은 알차다. 국립민속박물관과 협업해 지난 2019년 개관했다. 정식 명칭은 '배다리 성냥마을 박물관'이다. 실제 이 동네에 조선 최초의 성냥공장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착안했다.

성냥은 인류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꾼 발명품이다. 우리의 삶과 떼어 놓을 수 없으면서도 위험한 '불'을 간편하고 안전하게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곳에 있던 국내 최초의 성냥공장 이름은 인촌(燐寸)이었다. 그 자체가 도깨비불이란 뜻이다. 그걸 이 나라에 들여온 일제는 성냥 한 통에 쌀 한 되 가격을 매겼다. 폭리였다. 가난한 서민들은 제대로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옛날 성냥 초창기의 성냥이다. 당시 쌀 한 되 가격이었다고 한다. 명백한 일제의 폭리였다.
옛날 성냥초창기의 성냥이다. 당시 쌀 한 되 가격이었다고 한다. 명백한 일제의 폭리였다. 이상구
 
전시관엔 그 역사부터 제조공정 그리고 다양한 변신에 이르기까지 성냥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성냥으로 인해 달라진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전시실을 둘러보게 마련이다. 70~80년대까지 자리를 지켰던 금곡다방에 앉아 성냥쌓기 한 번 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규모가 작아 관람은 금방 끝난다. 아쉽기조차 하다.

인천동구의 박물관 투어를 마치면 시장기가 몰려온다. 4~5km쯤 걸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동구엔 그답게 서민 음식이 많다. 전편에 소개했던 '닭알탕'이나 '세수대야 냉면'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성업 중이다. 인천이 발상지인 쫄면 맛집도 동구 현대시장 내에 있다. 동구청 부근의 골목 안에 있는 '해장국 집(간판이 이렇다)'의 설렁탕도 일품이다.
 
해장국집 동구청 인근 골목 안에 숨은 해장국집. 상호가 따로 없다. 고수의 품격이 느껴진다. 설렁탕이 유명하다.
해장국집동구청 인근 골목 안에 숨은 해장국집. 상호가 따로 없다. 고수의 품격이 느껴진다. 설렁탕이 유명하다. 이상구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인류는 역사를 통해 배우고 깨달으며 더욱 진화해 간다. 달동네와 성냥공장은 그리 자랑스럽지는 못하지만 분명한 우리역사의 한 부분이다. 애써 감출 필요는 없다. 오히려 떳떳하게 드러내고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각오를 다지는 게 더욱 현명한 처사다.
#인천 동구 #박물관 #달동네 #수도국산 #성냥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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