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는 변신중 고층 아파트와 달동네의 공존. 동구는 한창 변신 중이다. 박물관에서 역사를 배운다.
이상구
동구는 인천의 관문이었다. 화수동이나 만석동엔 제법 규모 있는 항구가 들어섰다. 내륙 깊숙한 곳까지 바닷물이 흘러 들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나폴리 같은 수로의 도시였다. 섬에서 온 나룻배들이 온갖 해산물을 싣고 드나들었다. 배를 대는 곳을 중심으로 자연히 시장이 형성됐다. 중앙시장, 현대시장 등은 인천의 물류 중심지였다.
물길은 자주 넘쳐흘렀다. 만조 때나 비가 많이 오면 특히 그랬다. 사람들은 그런 불편을 막으려 모든 바닷길을 메워버렸다. 배다리, 수문통 등 지금은 지명에만 그 흔적이 남아있다. 당시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소 아쉽다. 수로에 배 띄우고 유유히 떠다니는 상상을 해보니 더 그렇다. 한때 이를 복원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지금은 잠잠하다.
오랜 역사만큼 도시는 쇠락했다. 시장마저 활기를 잃고 사람들은 속속 고향을 떠났다. 근자에 들어 재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산기슭 달동네를 밀어내고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전도관' 일대도 곧 재개발이 추진될 예정이다. 그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쨌든 동구는 지금 변신 중이다.
이 척박한 동네에 꽤 유명한 명물이 둘 있다. 둘 다 박물관이다. 박물관이라 하기엔 다소 규모는 작지만 그 의미는 깊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현대의 추억을 담고 있다. 그 중 하나는 50~60년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다른 하나는 그보다 조금 더 오래된 1930년대 인천의 산물(産物)을 전시하고 있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과 '배다리 성냥박물관' 이야기다.
두 박물관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걸음으로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거리다. 동구의 박물관 여행은 동인천역 2번 출구에서 출발한다. 출구를 빠져 나오면 북광장이 나타난다. 그 오른편으로는 속칭 양키시장이 있다. 그 옛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이 거래되던 곳이다. 70~80년대까지 흥청댔지만 지금은 흘러간 옛 얘기가 됐다.
수도국산이 달동네가 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