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빈과일보>를 사기 위해 가판대 앞에 줄을 선 홍콩 시민들을 전하는 트위터 계정 갈무리.
빈과일보
'빈과일보'는 홍콩이 중국으로의 반환을 눈앞에 둔 1995년 사업가 지미 라이(黎智英)가 창간했다. '빈과'는 사과를 뜻하며, 만약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지 않았더라면 악도 없고 뉴스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지은 제호다.
중국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따라 홍콩으로 건너온 지미 라이는 12살 때부터 의류공장에서 일하며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30대 시절 지오다노를 창업해 세계적인 의류 기업으로 키워냈다.
의류 사업을 정리한 그는 미디어 업계에 뛰어들어 '빈과일보'를 창간했다. 신문값을 파격으로 낮게 책정했음에도 올컬러로 인쇄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선정적인 가십성 보도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2년 중국이 둥젠화 홍콩 초대 행정장관을 통해 간섭을 강화하면서 '빈과일보'는 본격적인 반중노선으로 들어섰다. 당시 홍콩 정부는 지금과 유사한 보안법 제정을 시도했으나, 50만 명의 홍콩 시민이 참여한 대규모 반대 시위에 밀려 포기했고, 여기에 '빈과일보'가 큰 역할을 했다.
2014년 우산혁명,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등이 벌어졌을 때도 '빈과일보'는 시위대 편에 섰고, 더 나아가 직접 시위에 참여한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는 당연히 중국 정부가 주시하는 인물이 됐다.
마침내 계속된 시도 끝에 지난해 홍콩 보안법을 제정한 중국은 이 법을 무기 삼아 '빈과일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미 라이는 불법 집회에 참여한 혐의로 체포돼 지난 4월 징역 20개월을 선고받았고, 보석 신청마저 기각되면서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
또한 '빈과일보'의 기사와 기고문 등이 보안법을 위반했다며 수석 논설위원과 편집국장 등 주요 간부들을 잇달아 체포했고, 자산까지 동결하자 결국 벼랑 끝에 몰린 '빈과일보'는 '타의적 폐간'을 선택했다.
국제사회 비판에... 중국 "언론의 자유는 면죄부 아냐"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일제히 비난과 우려를 쏟아냈다. 영국의 도니믹 라브 외무장관은 "홍콩의 표현의 자유에 끔찍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도 홍콩 경찰이 '빈과일보' 주요 인사를 체포한 것이 정치적 의도라고 규탄했으며, 유럽연합(EU)은 "'빈과일보' 폐간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빈과일보'는 중화권 미디어 업계에서 '자유의 등대' 역할을 해왔다"라며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비롯해 다른 홍콩 매체들은 앞으로 (정부를 비판하는데)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대학 저널리즘 및 미디어 연구센터의 한 교수는 "'빈과일보'의 폐간은 충격적이지만,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라며 "홍콩 보안법이 제정됐을 때부터 빈과일보가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예상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렇게 보안법 제정 후 1년 만에 이렇게 빨리 폐간된 것에는 놀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빈과일보' 폐간과 관련한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언론의 자유는 면죄부가 될 수 없으며, 중국에 반대하고 홍콩을 어지럽힐 권리도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