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에 설치된 키오스크들
맥도날드
동네에 새로운 분식집이 생겼다. 지나가며 슬쩍슬쩍 보곤 하다가 들어가 보았다. 주문하려고 하니 "저쪽에서 해 주세요"라는 답이 들린다. 키오스크가 서 있었다. 이미 많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익숙한 광경이지만 새로운 자동주문 기계는 사람을 긴장하게 한다.
마음속으로 "도전!"을 외치고 다가간다. 다행히 내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두 번 정도 잘못 누르고 다시 맨 앞의 화면으로 돌아가서 무사히 주문을 마쳤다. 일전에 패스트푸드점에서 연이어 주문에 실패하자 좀 안쓰러운 목소리로 알바생이 "이리로 오세요"라고 불러서 결국 말로 주문했던 경험이 있어서 혼자서 무사히 주문을 마친 것이 뿌듯했다.
일상에서 사람의 일을 기계가 대신하는 일이 많아진다. 음식점과 카페의 키오스크는 흔히 볼 수 있는 자동화의 얼굴이다. 마트에도 스스로 계산하는 코너가 자꾸 늘어난다. 사람이 하는 일이 유지되어 일자리를 덜 줄이는데 보탬이 되겠다는 소심한 저항으로 버텨 보았지만, 이제는 키오스크와 밀당해야 한다. 물론 장점도 있다. 주문하는 이도 주문받는 이도 말을 덜 섞으니 낯선 사람과의 소통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조금은 피할 수 있다. 그것 말고 다른 장점을 나는 아직 못 찾았다.
디지털화는 계속됐지만, 코로나로 인해 성큼 빨라지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로봇 도입률은 세계적 수준이다. 산업용 로봇 밀도(노동자 1만 명당 로봇 대수)는 2018년까지 세계 1위다가 2019년에 와서 싱가포르에 1위를 내주었지만, 1만 명당 855대의 로봇을 도입해서 세계 2위이다.
기술이 발달했거나 인건비가 높은 나라에서 로봇 도입을 많이 할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한국, 싱가포르, 태국 등이 앞 순서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은 코로나 이전인데 코로나로 자동화가 가속화된 2020년, 2021년은 어떨지 아찔하기까지 하다.
디지털화는 서비스업과 산업 현장만이 아니라 금융 산업에도 상륙했다. 콜센터와 매장 안내, 창구 서비스직 등에서 일자리 감소가 예측된다. 이 직종들은 그동안 사무직종 중에 대표적인 비정규직 직종이었고 몇 년 전부터 정규직화되었지만 직제 등이 달라 '준규직'이라 불려온 대표적인 직군이며 대다수가 여성이라 성별 임금 격차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하는 차별받는 저임금 직종이다.
그뿐 아니다. 모바일 서비스가 강화됨에 따라 카드모집인과 보험설계사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특수고용직이라 해서 법정 휴가도 권리도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사원 복지도 전혀 누려보지 못했던 중장년 여성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출구는 어디인가
직접적인 일자리 위협 말고도 디지털화는 기존 일자리를 플랫폼 일자리로 많이 바꾸어버렸다. 배달 노동자, 대리운전, 가사 노동자 등의 직업이 그러하고 전문 번역가, 일러스트레이터, 동영상 제작자 등도 이제 플랫폼에 있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화를 그리거나 소설을 쓰는 창작자들도 플랫폼 일자리가 되었다.
누구나 일을 얻을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플랫폼은 중개인인 듯 숨어 있지만, 누군가는 건수로 누군가는 시간 단위로 임금을 받으며 시간을 쪼개며 살고 있다. 숙련에 따른 임금 인상은 불가능하다. 이동하고 대기하는 모든 시간은 계산에서 사라지고 자신의 노동을 충전할 자기 돌봄의 여유도 사라진다.
마치 당연하듯 4대 보험도 법정 휴가도 퇴직금도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장님이 누구니?"를 찾기가 간접고용보다도 더 어렵게 꼬아놓았다. 그러면서 자꾸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가사 노동자는 68년 만에 노동자임을 인정받았지만 이미 플랫폼이 시장 전반을 차지하고 있어 실제 혜택이 얼마나 돌아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부는 코로나 이후 디지털 뉴딜, 바이오 뉴딜을 외치지만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많지 않다. 그나마 가장 유망하다고 하는 정보기술(IT) 일자리도 좋은 일자리인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최근에 잘 나가는 기업에서 IT 개발인력을 고연봉으로 모셔 가려 경쟁이 붙었다는 기사가 뉴스를 휩쓸었다. 그러나 그렇게 잘 나간다는 일자리에서도 노동의 소외는 계속된다.
많은 사람이 검색에서 엔터, 쇼핑까지 그의 노예가 되었다고 자조하던 한국 최대의 포털 네이버에서 신입사원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팀장급의 개발자가 목숨을 끊었다. 그 원인이 첨단적인 것이 아니라 직장상사의 무분별한 갑질이라는 고전적인 것이 더욱 기막히다. 디지털화로 인한 첨단적인 노동 착취와 갑질과 장시간 노동이라는 고전적인 노동 착취가 함께 나타나는 지금, 출구는 어디인가?
여기에다 기후위기 또한 더 기다려줄 수 없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디지털화 못지않게 기후위기는 어려운 사람들을 습격한다. 지구온난화로 생기는 홍수와 사막화는 더 가난한 나라의 더 가난한 사람들을 습격한다.
도심의 열먼지와 미세먼지는 야외에서 일하는 배달 노동자, 건설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한다. 도심에서 환기도 잘 안 되는 좁은 주방의 열기와 열악한 주거환경 또한 기후위기에 더 취약한 이들이 누구인가를 묻게 한다. 또 화석연료를 없애는 과정에서 정규직보다 더 대책 없이 내던져질 비정규직, 일용직, 지역의 관련 일자리, 여성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모르면 묻고 배워가면 된다
이런 모든 고민의 답은 사실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 일단 가장 괴로운 사람들, 일자리를 위협받는 사람들, 플랫폼의 불공정에 피해당하는 당사자들이 나서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이들을 자꾸 배제하기 때문에 조직으로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권리를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나서기 시작했다. 배달 노동자들도 대리운전 기사들도 노조를 만들었다. 플랫폼에 콘텐츠를 창작하는 노동자들도 노조로 모였다. 그뿐이랴. 특수고용이라서 노동법 적용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방송작가 등도 방송작가유니온으로 활동하고 있다. 40만이나 되는 많은 숫자이지만 노동조합으로 제대로 모여보지 못했던 보험설계사들도 수천 명이 노동조합으로 뭉쳤다.
이러한 당사자들의 조직과 나섬에 무엇이든 도움을 주는 일 또한 필요하다. 이제 새로운 일자리는 자꾸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일자리로 만들어질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적용제외 없는 노동법과 어렵게 만든 당사자 조직들이 더욱 튼튼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87년 전야였던 86년 우리는 합법적 노동조합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87년 방식의 노동조합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디지털화와 기후위기, 노동의 위기가 밀려온 지금 오히려 길이 보이지 않겠는가. 길을 모르면 묻고, 가는 방법을 배워가면 된다.
그 어려운 서브웨이 샌드위치 주문을 마치고 한 입 베어 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으나 또다시 배울 것들이 생겨난다. 배울 것이 많으면 청춘인가? 노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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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와 밀당하는 시대, 자꾸 배울 것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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