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센터의 담당자인 누리, 푸른, 자야가 앉아있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산청에 정착한 지 이제 4년 차에 접어든 푸른에 비해 자야는 함양에 내려와 산 세월이 꽤 길다. 시절인연에 따라 금산과 남원의 외딴 '오지들'을 거쳐 함양에 흘러들어온 것이 2009년 여름이라니, 어느새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함양에 와서도 처음 몇 년은 도시에서 하던 일에 주력했기에 서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지역에서는 기껏해야 집과 상림과 도서관과 시장을 오가는 게 전부였다는데.
"그러다가 점점 텃밭 일과 시골길에 빠져들고, '카페빈둥'에서 지역 사람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그걸 계기로 내가 할 수 있는 뭔가를 '여기'에서 하게 되면서 현재의 생활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전에는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도시에 갔다면, 몇 년 전부터는 차 타는 것도 싫고 도시에 머무는 자체가 힘들어서 일을 피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직업적으로 해온 일거리가 차츰 줄어들면서 지금은 주업과 부업과 알바의 경계가 희미해진 상태인데, 이게 묘하게 안정되고 느긋한 느낌을 주네요(웃음)." (자야)
조금씩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트고 확장해간 그는 지난 몇 년 사이 마음수련과 토종씨앗과 책을 매개로 모임을 구성해 다양한 활동을 벌였고, 올해는 '걸으면서 뭐라도'라는 지원사업을 맡아 하는 중이다.
'걷는 기쁨과 자유의 회복'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사업을 통해, 그는 몇몇 사람들과 함양읍 보행환경 조사 작업을 시작해 얼마 전 상반기 활동을 끝냈다. 또 한 달에 한 번은 여럿이 함께 모여 필봉산과 상림을, 담장 아래 꽃들이 어여쁜 운림리 골목길을, 그리고 한 번 가본 적 없는 읍내 동네들과 그 사잇길을 걷는다.
"걷기는 기후위기 시대에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활동이지만, 무엇보다 걷기가 나의 일상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업으로 추진해볼 마음을 먹은 것 같아요. 공적 활동이라 해도 첫걸음은 자기 자신의 관심과 기질과 생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다만 활동을 하다 보면 목표가 커지기도 하고 없던 비전이 생기기도 하죠. 이 사업도 다른 사람들이 걷기의 즐거움과 의미를 알게 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출발했지만, 하다 보니 점점 욕심이 나더라고요. 구례처럼 차없는거리도 하고 싶고, 장기적으로는 읍에서만이라도 모든 사람이 차를 놓고 걸어 다니는 그런 교통체계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도 싶고." (자야)
도시에서는 자신의 '일상'과 '활동'이 제대로 소통하거나 융화하지 못했음을 그는 기억한다. 그럴 때 '나'라는 존재는 곧잘 덜그럭거리며 소음을 내다가 결국엔 어딘가 어긋나거나 부서지곤 했다. 그가 자신의 삶 안에서 일상과 활동이 사이좋게 만나 서로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다행히 시골이어서 그게 조금쯤은 더 가능할 거라고, 힘들게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거라고 그는 믿고 있다.
원하는 대로 성장하고 나이 들어가기를
일 년도 어느새 절반이나 흘러간 지금, 활동백과 기록 작업은 마무리됐지만 두 사람은 전보다 더 분주하고 들썩거리는 눈치다. 아닌 게 아니라 푸른은 "눈 뜨면 출근, 눈 감아야 퇴근일 정도로 일이 많고 바쁘다" 한다.
"시부모님은 제가 돈 되게 많이 버는 줄 아실지도 몰라요(웃음). 주어진 일들을 신나게 하고는 있는데 너무 포화상태라 이제는 균형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활동도 하고 돈도 적당히 벌고, 집안일 돌볼 시간도 있으면 좋겠어요." (푸른)
"제가 운영하는 1인출판사에서 무려 4년 만에 두 번째 책을 출간하게 되어서 요즘 좀 바빠졌어요. 여름 안에 책이 나올 예정이니 많이들 사주시면 좋겠네요(웃음). 지금까지는 출판사 일을 너무 띄엄띄엄했는데 앞으로는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나, 두 번째 책 팔아서 얼른 세 번째 책 내야지, 그러고 있어요." (자야)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데 빗줄기가 거세어진다. 세 시간에 걸쳐 나눈 이야기들이 축축한 공간을 떠돌다 사라지는 가운데, 유독 어떤 단어와 문장들은 귓속으로 흘러들어 찰랑대는 것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20대 초의 내게 쏟아진 훈계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돌아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 게 더 좋은 선택이고 결정이었다"는, "나와 세상 사이에 두려움과 단절 대신 사랑과 연결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잘 늙어가고 싶다"는, 그런 말들.
다음에 어디서라도 두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믿고 존중하는 사람"은 얼마나 더 단단하게 성장해가고 있는지, "사랑과 연결 안에서 나이 들어가고자 하는 이의 삶"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인지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어쩐지 지금보다 더 근사하고 충만한 모습일 것 같아,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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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활동백과 연재 보기 http://omn.kr/1pueb
글 | 자야
사진 | 임현택
기획/진행 | 누리
Author 자야
새벽 요가, 산책길의 노래, 지치지 않을 정도의 텃밭일, 마음과 마음의 이어짐, 용기 있고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것, 을 좋아하는 함양 주민입니다.
Author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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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시골에서 그때 그 기사 쓴 사람, 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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