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일본의 의료 붕괴 현황과 보건의료 노동

등록 2021.07.07 14:10수정 2021.07.0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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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코로나19 이후 '필수 노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재난 상황에서의 사회기능 유지라는 측면에서 필수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규제를 철폐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독특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이미 일본의 '필수 노동' 절반 이상이 여성,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공공서비스의 질 제고와 안정적 제공을 위해 이들의 임금 수준과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공공행정 부문에서 2020년 4월부터 '회계연도임용직원제도' 시행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1년 단위 기간제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실제로는 노동시간 차이가 거의 없지만 파트타임으로 분류되어 임금과 노동 조건에서 큰 차별을 겪고 있다. 지자체 외에도 재난 상황에서 그 중요성이 더 주목받는 고용서비스, 학교, 보육시설 등의 부문에서도 비상근 직원 제도 등에 따른 비정규직 문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심화하는 양상만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와 직접 관련되는 보건의료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연이어 발생한 보건소 직원들의 과로사

코로나19 확산 초기, 한국의 1339와 스마트폰 앱 등을 활용하는 방식과 대조적으로 지자체별 보건소 전화 대응과 팩스 활용 같은 일본의 후진적 이미지가 국내 언론에서 종종 다루어지곤 했다. 일본의 보건소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죽어 나가고 있다. 앞서 소개한 회계연도임용직원제도를 통해 지자체 산하 보건소에서도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비정규직을 적잖이 채용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소 업무,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응 업무는 개인정보 관리를 비롯해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과 경험이 필요하기에 비정규직 인력 채용이 업무 부담 완화로 이어지지 못한다.

문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보건소를 감축하고 규모를 축소해 왔기 때문에 감염병 대책 업무를 소화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1) 그러다 보니 2020년에는 잔업 시간만 연간 1천 시간은 물론 2천 시간을 넘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으며 보건소 직원의 잇따른 과로사가 큰 사회적 이슈였다.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의심 환자'인 시민과 첫 접촉 창구인 보건소에서부터 '의료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의료 노동자들에 대한 희생 강요

간호사의 경우 이전부터 있었던 인력 부족이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화하고 있다. 문제는 감염 대책 등으로 인해 노동 강도가 급격히 강화되고 있는데 반해 노동시간은 늘어나고 노동 조건은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여금 삭감이나 정기승급 보류 등을 감수하는 일도 적지 않다. 그 배경에는 감염을 우려한 내원 환자 감소, 위험 회피를 위한 병원 측의 의료 행위 중지 등으로 인한 경영 악화가 있다. 물론 일본 병원들의 전반적인 경영 악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의 병원들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1970~80년대에 경쟁적으로 병상 수를 늘려 왔다. 그런데 의료 인력 확충이 병상 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던 상황에서2) 1990년대 들어서자 버블 붕괴가 일어나고 장기 침체에 돌입했다. 결국, 병원들은 규모를 막론하고 심각한 경영 악화를 맞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2000년대 초반 집권해 전방위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밀어붙였던 고이즈미 정권은 병원들에 대해 경영 효율화 압박을 가하였다. 이로 인한 대표적인 결과 중 하나가 소아과 부족 현상이었다. 수익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소아과, 감염병 대책 등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3) 이런 점에서 보면, 코로나19 확산 제1파 시기에 일본 일부에서 의료 종사자들에 대한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일어났던 것은 일본인들의 국민성 또는 민도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이 자국 병원들의 실태를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병원의 감염병 대책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지난해 의노련(일본의료노동조합연합)이 391개 시설의 간호사 10만 3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야근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교대 병동의 비율이 42.7%, 16시간 이상의 장시간 야근은 전체 병동 수의 52.5%, 전체 간호사 수의 51.5%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간 야근일수는 3교대의 경우 9일 이상이 24.8%로 가장 많았고, 2교대의 경우 4.5회 이상이 35.6%로 가장 많았다. 근무 간격은 12시간 미만이 56.2%, 8시간 미만은 41.5%로 나타났다. 근무가 끝나고 거의 잠잘 시간도 없이 다음 근무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의료 현장의 간호사들이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료 현장에서 '의료 붕괴'와 더불어 의료 종사자들의 노동 강도 강화 및 노동 조건 악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한 종합병원 창가에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은 무리'라는 문구가 붙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배경에는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이 지난 4월 초 일본간호협회 측에 올림픽 및 패럴림픽 대회 기간 중 코로나19 감염 대책을 위해 간호사 500명을 확보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있다. 요청 내용은 간호사 1인당 9시간씩 5일 이상 활동할 것, 식비, 교통비, 숙박, 각종 보험 등을 제공한다고 되어 있으며 보수에 관한 사항은 없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측에서는 간호사 자격을 갖고 있지만, 의료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 이들의 수가 상당하므로 이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 말했다. 이들은 왜 코로나19를 계기로 수많은 간호사가 현장을 떠났는지는 이해도 없고 관심도 없는 듯 보인다. 일본 정부는 의료 부문에서도 그저 '규제 철폐'에만 관심을 보인다. 간호 인력 가운데에서도 인력 수급 문제가 더욱 심각한 부문은 요양병원, 요양원 등 사회복지시설인데 이미 2003년에 사회복지시설에 대해서는 근로자 파견 금지가 해제되어 비정규직 간호사가 급증한 바 있다. 그런데 2021년 들어서는 파견법에서도 더욱 규제 대상이 되어 왔던 '일용 파견'을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허용하였고, 또 특례조치로 감염병 백신 접종장에 대한 간호사 파견 근로를 허용하였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 붕괴 현상이 나타나는 가운데 정부가 관심을 두고 문제해결에 나서기는커녕 되려 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니 인력 지원을 요청하면서 현장의 불만이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의노련과 의사노조 등이 의료 붕괴 상황에서 올림픽은 무리라고 목소리를 냈고, 이에 시민들도 큰 호응을 보내고 있다. 물론 한국의 경우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코로나19 집단 감염 속출 등 긴박한 상황을 거치면서 우리는 그저 의료 종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희생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 사례는 감염병으로 인한 재난 극복을 위해서는 의료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말해준다.


1) 일본의 보건소는 1990년 850개소에서 2020년 469개소로 꾸준히 줄어들어 왔다.

2) 일본의 병상당 의료 종사자 수는 100병상당 의사 수 86.5명, 간호사 수 18.5명으로 OECD 내에서도 적은 수준(2016년 기준)이다. 인구당 의료 종사자 수 역시 낮은 수준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3) 감염병 병상 수는 1984년 15,042개에서 2002년 1,854개로 줄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직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7,8월호 ‘세계의 노동’ 꼭지에도 실렸다.
#일본 #코로나19 #필수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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