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사무실 회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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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차장 직급에 어울리지 않게 고객사 높은 위치에 있는 부장부터 협력사 대표이사, 영업 대표 그리고 지사장까지 여러 높은 직급의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물론 직급은 차장이고, 30대 중반이었을 때라고 해도 직책이 팀장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그에 준하는 대우를 해줬고, 조금은 어려운 자리까지 동석하는 일이 늘었다.
이렇게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내게는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사람들뿐이었고, 이런 분들과 외부에서 편한 마음으로 식사 한 번, 술 한 번 함께 하지 못했다. 모든 게 업무의 연장이었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긴장했다. 머릿속에서는 그런 분들이 듣기 좋아할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 항상 생각이 복잡했다.
그러던 어느 날 A금융그룹의 계열사인 A카드에 솔루션을 제안할 일이 생겼고, 솔루션 소개부터 BMT(Benchmarking Test)까지 내가 직접 맡아서 진행했다. 사업을 제안하기 전부터 회사에서는 크게 기대를 하는 눈치였고, 나 조차도 큰 변수가 없으면 당연히 우리 회사 솔루션이 도입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A카드사 제안하기 수개월 전 같은 금융그룹의 A은행에 동일한 솔루션으로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했고, 해당 프로젝트 PM(Project Manager)도 내가 직접 수행했기 때문에 더욱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A카드사의 사업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사업 수주에 실패했고, 함께 BMT(Benchmarking Test, 주요 기능 품질 성능 평가시험)에 참여했던 경쟁업체가 수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늘 하던 대로 꼼꼼히 체크하고, 준비했지만 경쟁사의 직원이 워낙 잘 준비했다. 또 그게 A카드사 담당자가 조금은 더 선호하는 솔루션이었다.
결과가 발표되고, 품질평가 시험을 위해 고객사에 설치해 두었던 장비를 철수하기 위해 A카드사를 방문해야 했다. 방문 시간이 오전이었지만 장비를 철수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밥은 먹어야 했지만 보기 좋게 수주에 실패한 나로서는 편하게 A카드사 담당자와 밥을 먹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조금 늦더라도 사무실에 복귀해서 점심을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짐을 정리하고, 고객에게 인사하고 나오던 중 경쟁했던 업체의 직원을 만나게 됐다. 그는 사람 좋은 인상으로 내게 명함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고, 시간이 괜찮으면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이번에 경쟁했던 B사 홍길동 차장입니다. A사 김 팀장님 맞으시죠?"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아 한 달 동안 같은 전쟁터에서 경쟁한 사이잖아요. 이것도 인연인데 점심 전이면 식사 같이 하시죠."
"네? 그러시죠."
처음 보는 내게 식사를 함께하자는 그가 난 조금 이상하게 보였지만 한 달이나 같은 사업으로 경쟁한 것도 인연이고, 회사는 달라도 같은 업무를 하는 포지션이다 보니 다른 사업에서도 만날 수도 있다는 계산에 그러자고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함께 식사하러 가서 그는 사람 좋은 미소와 어색함을 잊게 하는 편한 입담으로 연신 대화를 이끌었다. 어느새 나도 그의 웃음이 보기 좋았고, 그와의 대화에 빠져 들었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은 짧았지만 내가 그를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외부 사람과 함께한 자리였지만, 정말 편안하고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가끔씩 그를 만났고, 만날 때마다 처음 받았던 좋은 느낌은 계속 유지가 되었다. 아니 오히려 관계가 편해져 그와 만난 시간만큼은 서로 각자의 업무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수다로 푸는 시간이었고, 진행했던 업무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며 업무 스킬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난 그와 우정을 다져갔다. A카드사 이후에도 다른 고객사에서 그가 다니는 B회사와 여러 차례 경쟁 위치에 있었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선의의 경쟁을 이어갔다. 물론 사업 수주의 결정적인 기회가 BMT나 기술영업이 좌우하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업이 가격을 최우선으로 하는 고객사가 많아 필드에서 그와 만나서 경쟁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았다.
A카드사처럼 BMT가 사업 결정에 큰 영향을 주는 사업을 흔하게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B생명보험사 사업에서 BMT로 제대로 다시 그와 경쟁했고, 그 사업에서는 A카드에서 밀렸던 빚을 톡톡히 갚았다.
"홍 차장님, 오늘 시간 괜찮아요? 식사 같이 해요."
"오, 김 팀장님. A 카드 복수한 기념인가요. 그럼 오늘 맛있는 거 쏘셔야 하는데."
"당연히 맛있는 식사로 쏠게요. 어디서 볼까요?"
최근에는 각자의 길이 많이 달라지고, 코로나로 활동을 많이 자제하게 돼서 그런지 2년 동안은 그를 만나지 못했다. 물론 과거에도 그를 만난 게 1~2년에 한 번일 정도로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으니 최근 2년도 특별히 이유가 있다고 하기는 뭐하다.
가끔씩 생각날 때 한 번씩 연락하고, 서로가 시간이 되면 편하게 만나는 그런 사이다. 서로의 일을 존중하지만 부담은 갖지 않는 사이다. 서로 간의 큰 이해관계가 없어서 그런지 그와의 대화가 편했고,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공감도가 커서 업무 얘기를 해도 '탁'하면 '탁', '척'하면 '척'이었다.
오랜 시간을 자주 만난다고 꼭 친구는 아니다. 긴 시간 자주는 아니었지만 서로에게 편한 상대가 되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런 사람도 진정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만나는 내내 난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얘기하고, 거짓 없이 웃었고, 늘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 시절 적어도 그 정도 조건이면 친구로는 충분했다. 그나저나 홍 차장, 아니 홍 이사는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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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편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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