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 conditioner에어컨
pixabay(상업적 무료사용 가능)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여름 초입일 때만 해도 늦게 시작된 장마가 꽤 오랜 시간 비를 뿌릴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지만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길 것 같은 장마는 끝이 났다.
습한 날씨로 인한 끈적거림으로 늘 불쾌했던 하루하루를 보내며 차라리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씨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 끈적거림이 싫어서. 하지만 그리 바라던 뜨거운 태양볕도 이젠 두렵기까지 하다. 내 몸도 마음도 뜨거운 여름 날씨에 홀라당 타버린 것 같이 촉촉함이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뜨거운 날씨는 모든 일상들을 천천히 또는 멈추게 한다. 출근길 아침부터 27도를 넘어선 날씨다. 지하철을 타려고 조금만 서두르면 연신 쏟아지는 땀방울에 뽀송했던 옷이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든다. 요란하게 도는 손 선풍기를 얼굴로 가져가 보지만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말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십여 분의 도보 이동 후에 도착한 지하철 역은 어느새 출근하려고 역을 빠져나오는 사람들과 출근길에 오르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승강장 위에는 출근을 하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그 행렬들에 나도 동참한다.
기다렸던 지하철을 타고나면 객차 안 시원하게 쏟아지는 에어컨 바람이 몸에 흘러내리는 땀들을 식히며 잠깐의 더위를 쫓아준다. 잠깐의 시원함도 시간이 지나면 들이차는 출근길 승객들로 에어컨 바람인지, 선풍기 바람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땀을 식히고 난 후라 조금은 견딜만하다고 생각하며 버틸 때쯤 어느새 지하철은 내가 갈아타야 할 환승역에 도착하고, 한 차례 환승 후에 사무실 근처 역에 도착한다.
지하철역에 내려 다시 걷기 시작하길 십분. 식었던 땀방울은 십분의 이동으로 내 온몸에 다시 비를 뿌린다. 어느새 몸의 피로도는 많이 상승해있고, 더운 날씨 탓에 아침부터 체력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원한 물 한잔으로 수분을 보충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내 본캐의 하루는 시작된다.
내 여름철 출근룩은 언제인가부터 늘 긴 셔츠나 칠부 셔츠가 주를 이룬다. 시원하다 못해 조금은 서늘한 사무실 온도 때문에 반팔 차림으로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한기가 들곤 한다. 40대 초반일 때만 해도 몸에 열이 많아 늘 시원한 곳을 찾았고, 에어컨이 있는 근처 자리가 한 여름에 내겐 천국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젠 에어컨과 멀리 떨어진 자리임에도 한참을 일하다 보면 그 서늘함에 팔뚝에 닭살이 돋는다. 그렇다고 온도를 높이기에는 사무실에 열정을 쏟아내는 젊고, 혈기왕성한 직원들이 많다. 그래서 긴 옷을 입고 있거나, 카디건 정도는 사무실에 여분으로 두게 됐다.
그렇게 열심히 일 하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퇴근을 알리고 있고, 서둘러 퇴근길에 나서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다 보면 일과 내내 시원했던 그 몸은 온데간데없어진다. 한낮의 더위는 아니어도 식지 않은 여름 날씨 덕에 내 피부는 촉촉하게 수분 보충을 한다.
퇴근길 지하철에는 하루를 끝마치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이라 환하게 밝아야 하지만 뜨거운 날씨 때문인지, 눈에 흘러든 땀 때문인지 지쳐 보이고, 어두워 보인다. 오만상을 찡그린 사람들도 제법 있다. 그들을 보며 내 표정도 저 사람들 같을까 잠깐은 머릿속에 떠올려보지만 끓어오르는 온몸의 더위로 내 머릿속도 생각이라는 녀석을 멈춰버린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몸을 맡긴 채 퇴근길을 가다 보면 어느새 집 근처에 도착해 있는 날 발견하곤 한다.
더위에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을 들어서면 어느새 시원하게 내 몸을 감싸는 냉기에 잠깐 동안 멈췄던 내 몸과 머리는 어느새 정신이 든다. 거실로 접어든 발걸음에 처음 눈에 들어오는 건 소파에 앉은 딸아이다. 가볍게 내게 인사하고는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한다. 아들은 자신의 방에서 퇴근한 내게 손을 들어 친근감을 표시한다.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는 아내는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라는 말과 함께 살짝 고개를 돌려 미소 짓는다.
지쳤던 하루의 일상에서 이제 정말 퇴근한 기분이 들었다. 뜨거웠던 바깥 날씨와는 다르게 저녁 내내 집안 공기는 선선함을 유지한다. 그렇게 거실 테이블에 앉아 뷰가 있는 식탁에서 우린 대화가 오가는 정겨운 우리만의 저녁 식사를 즐긴다. 식사 후에도 우리의 대화는 이어지고, 그렇게 식탁에 남은 음식은 한 시간 가까이 자리를 지킨다. 길어지는 우리 가족의 대화는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이 된 지 오래다.
오랜만에 그냥 늘어진 휴일이다. 코로나가 심각해져 어디 나갈 수도 없지만 너무도 지치고 더워서 꿈쩍도 하기 싫은 휴일 오전이다. 내 몸은 거실 바닥을 침대 삼아 녹아내린 엿처럼 '찰싹' 달라붙어 늘어져 있다. 오전부터 바깥의 찌는 더위로 열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거실 실내 온도는 어느새 29도를 가리킨다. 시간은 정오를 가리키고 기다리던 실내 온도가 30도에 육박했다.
푹푹 찌는 더위로 심신이 많이 지친 하루였지만 우리 가족의 일상만큼은 늘 일상다반사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내겐 이 '거기서 거기'라는 표현은 그리 나쁘게 해석되지 않는다. 늘 작은 사건, 사고가 있지만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닌 유쾌한 사건들이 우리 집에 늘 생긴다. 우리 집에서는 같은 일들의 반복이라는 뜻이 아니라 행복하고, 평온한 일상이 반복돼서 일어난다는 의미로 종종 쓰인다. 그래서 난 우리 가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은 항상 '거기서 거기'이길 바란다.
지금도 내 옆에는 아내와 딸아이가 '티격태격' 하고 있다. 오늘 논쟁의 이유는 '딸아이가 아내 말을 너무 안 듣는다'인 듯싶다. 딸아이는 '더 이상 엄마랑 얘기 안 할 거야'라고 하고, 아내는 '그래 나한테 말 걸지 마. 너만 손해지'라고 하면서 막장으로 치닫는 듯 보인다. 하지만 금세 둘은 다시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를 합창한다. 어제도 그랬던 것 같은데 역시 오늘도 같은 마무리다. 그래서 우린 늘 '거기서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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