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필자
김성수
2020년 내가 영국 영주권을 회복했을 때, 우리 부부는 향후 이런 일이 또 반복될 수도 있으니 이번 기회에 아예 영국 시민권을 취득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영국시민권을 신청했고 올해 7월 22일, 영국에 처음 온 지 31년 만에 시민권자가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영국 국적을 받으면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는 통보를 주영 한국대사관으로부터 받았다. 나는 대사관에 '지난해 환갑이 지났으니 4년 후 65세가 되면 복수국적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65세 이상 복수국적 허용은 무조건 65세 이상에 대해 복수국적을 허용한다는 내용이 아니니 혼란 없으시기 바랍니다. 외국 국적으로 귀화한 자는 당연히 국적상실신고를 하셔야 하며, 국적상실자가 한국으로 영주귀국을 하여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고자 하는 경우 65세 이상이면 국내에서 국적회복업무를 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내가 여생을 한국에서 살지 않으면 65세가 넘어도 복수국적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반면 영국 정부는 복수국적을 남녀 상관 없이 모두 인정한다.
나는 한국 정부의 국적법을 납득할 수 없다. 세계 대부분의 선진국은 복수국적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간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복수국적은 경제적으로는 더 많은 투자를 끌어들이고 인구감소도 막는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또 원활한 문화교류를 위해서도 복수국적을 용인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걸 한국 정부는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복수국적 이슈에 있어서 병역 문제가 함께 거론되곤 한다. 남북 분단 상황이 문제라면 병역을 마치거나 면제받은 이에게는 복수국적이 허용돼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처럼 징병제를 실시하는 대만, 이스라엘, 독일, 핀란드 등은 모두 복수국적을 인정한다. 지금은 19세기처럼 쇄국정책을 실현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나.
환갑이 넘은 내게 복수국적 유지 여부는 경제적으로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그에 따른 애로사항도 없다. 그러나 인간은 역사적 존재다. 나무가 그 뿌리가 잘리면 제대로 자랄 수 없듯 역사를 상실한 인간은 올바른 삶을 누리기가 어렵다. 대한민국은 나의 뿌리이자 정체성이다. 나는 여전히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뼛속까지 한국인인 것이다.
최근 나는 복수국적 허용에 관한 건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현재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국적 상실의 순간에 놓인 나는 여전히 한국을 뿌리로 둔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7월엔 해방 후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사건을 피해자 입장에서 다룬 책 <조작된 간첩들>을 펴냈다.
"악용 방지책 세우고, 복수국적자의 민간외교 역할 장려해야"
복수국적 인정이 나만의 생각은 아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포들이나 한국에 사는 이들도 복수국적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제도 개선을 바라고 있었다.
한 재미동포는 "어쩔 수 없이 외국 국적을 선택한 한국인을 그저 '변절자' 혹은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외국 국적을 택하는 일은 비단 개인의 영리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삶의 터전이 한반도 내에 머무르지 않는 경우, 가족 때문에 직장 때문에 타지에서의 안정성 때문에...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한 호주동포는 "영주권자의 신분은 항상 불안정하다"라며 "어쩔 수 없이 호주 시민권자가 됐다.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잃었지만 나는 스스로 한국인이라 여긴다"라고 말했다.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한 지인은 내게 "분단된 나라에서 '통일'이라는 미래를 위해서라도 포용적인 시각으로 복수국적 허용 완화를 하되 악용 방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복수국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건 '공정'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갖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국적은 다른 나라에 두고 한국의 복지 혜택만 누리는 소위 '얌체족' 사례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다 보니 그런 것 같다"라고 짚었다. 그러므로 "정부가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는 한편, 복수국적자가 양국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도 동시에 펼쳐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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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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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민권자 됐으니 한국을 떠나라? 이게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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