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집 수박 사진어설픈 농사꾼들의 첫수확물 치고 제법 수박이 실하다
조하나
집에서 기른 수박 '실물 영접'했습니다
엄마에게서 수박을 심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그것이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농사라는 게 어디 보통 어려운 일인가.
특히 과실의 경우 땅과 물, 기후와 종자까지 맞춤이 되지 않으면 실한 결과물을 얻기가 어렵다. 게다가 나의 부모님은 평생 농사와는 상관없이 살아오신 분들이고, 재작년에 새집을 지으신 뒤, 마당 한구석을 텃밭으로 일궈 고작 고추나 호박 따위를 심어 먹은 것이 농사 경력의 전부였다.
그런데 며칠 전, 나는 본가에 내려가 그 말로만 전해 듣던 수박의 실물을 영접하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수박은 이제 어린아이 머리통에서 배구공만 한 크기로 한 뼘 더 자라나서는 짙은 초록색을 뽐내며 텃밭의 한구석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어찌나 어여쁘고, 탐스러운지 보고만 있어도 흐뭇했다.
그날 저녁, 세 식구가 둘러앉은 저녁 밥상 앞에서 난데없이 토론회가 벌어졌다. 수박이 먹기 좋게 익었으니 내일쯤 따야겠다는 엄마와, 적어도 사나흘은 더 익혀야 제대로라고 주장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나는 누구의 말이 옳다 그르다 편을 들 수도 없어 고개만 연신 갸우뚱했다.
급기야 엄마가 수박을 따지 말고, 세모 모양으로 살짝 조각내 안을 들여다보자는 의견을 내놓자, 아버지가 마지못해 항복을 하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내일 아침 세 개의 수박 중에서 제일 실해 보이는 놈을 골라 손으로 두드려 보고 '통!' 하고 맑은소리가 나면, 그때 그것을 따자고, 극적으로 합의를 보았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나서 아버지가 텃밭에 나가 수박을 따오셨다. 아버지로부터 수박을 건네받은 엄마가 칼을 들었다. 엄마의 표정이 비장했다. 마침내 엄마의 손에서 수박이 '쩍!' 하고 갈라졌다. 적당한 붉은 빛의 먹음직스러운 과육이 수줍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한 조각 작게 잘라 입에 넣자, 시원하고도 달큼한 맛이 혀끝에 착하고 감돌았다. 절로 이런 말이 나왔다.
"그래, 이게 여름이지!"
사실 나는 요즘 들어 "아이고, 덥다!" 소리가 입버릇처럼 붙었다. 학원 강사로 일하다보니 수업이 있을 때면 남들보다 배 이상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쓴 채 한참 떠들다 보면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리고 마스크 안이 절로 축축해진다. 그런데 어설픈 농사꾼들의 첫 수확물치고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수박을 앞에 놓고 보니 잠시나마 무더위가 가시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문득 시골 텃밭에 남은 두 개의 수박이 어찌 지내고 있나 그 안부가 궁금해진다. 혼자 먹어선 그 맛이 안 나는, 여럿이 둘러앉아 단물을 뚝뚝 흘려가며 시끌벅적하게 먹어야 제맛인 과일, 수박!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좀 더 만끽해보자. 여름엔 뭐니 뭐니 해도 수박이 최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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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키운 수박 먹어보셨나요? 전 먹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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