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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 연합뉴스
법조일원화 추진이 위기에 처했다. 법원개혁, 사법개혁이 위기에 처했다.
먼저 법조일원화가 무엇인지 정의해두자. 법조일원화는 사회 활동 경험을 충분히 가진 법조인을 법관으로 임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바로 법관을 선발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변호사가 되어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투쟁해본 경험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경험을 갖춘 사람을 법관으로 임용하는 제도가 바로 법조일원화다. 이를 통하여 우선 20대에 법관이 되어 재판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사회생활 경험,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법관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법원 관료주의 해체
법조일원화는 결정적으로 법원의 관료주의를 해체하는 효과가 있다. 지금의 법원 체제는 관료제로서 연소한 법관을 선발하여 법원 내 훈련을 거쳐 승진과 전보를 한다. 법관 인사권이 대법원장 등 인사권자에게 집중된다. 승진을 거치면서 법관들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식 체계를 갖춘다.
이 결과, 법관들은 국민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대법원의 판례만 추종하고 법원의 권위를 우선하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수직적인 서열체계가 완성된다. 외부적으로는 시민사회와 단절된 폐쇄적인 법원이 형성된다. 사법의 신뢰는 떨어지고 대법원과 법원행정이 재판의 결과를 좌우하는 사법농단 사태가 발생한다. 법원의 관료제를 개혁하면 이들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법원 관료제 개혁의 핵심 중의 하나가 바로 법조일원화다.
법조일원화의 20년 역사
우리는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법개혁 당시 법조일원화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2003년 구성된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는 2004년 사회적 합의를 거쳐 법조일원화 도입을 확정했다. 당시에 참여한 단체는 대법원,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 교수 및 시민단체였다.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나는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위원으로서 법조일원화를 담당했다. 나는 강하게 법조일원화를 주장했고 법원은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치열한 대립이 있었지만, 법원도 개혁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법조일원화 도입 근거로 나는 다섯 가지를 주장했다. 첫째, 우리 사회에서 법치주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법원의 역할이 늘어날 것이다. 둘째, 법원은 다양한 사회의 경험을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 즉 개방적인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셋째, 법치주의의 요구에 응하여 법관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해야 하고 법원을 수평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넷째, 법치주의 요구의 근저에는 국민의 인권과 권리의 옹호, 민주주의 수호가 있기 때문에 공익성, 공공성에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다섯째, 법치주의의 요구에 부응하는 법조일원화는 단순히 변호사의 경험으로 대변되는 사회의 경험을 법원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관료 법원을 대체하는 법원의 새로운 구성 원리다.
다행스럽게 나의 의견은 받아들여져 법조일원화는 전면 실시로 합의되었다. 물론 근본 원인은 법조일원화가 법원개혁, 사법개혁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사법개혁위원회 이후 법조일원화를 법원의 선의에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법조일원화를 되돌릴 수 없도록 법률로 확정지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과거 사법개혁 과정에서 많은 개혁이 흐지부지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타당한 주장이었다. 이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국회였다. 국회는 2011년 법원조직법 개정을 통하여 '최소 10년 이상'의 다양한 경험을 갖춘 법조경력자들을 판사로 선발하도록 했다. 물론 시행은 단계적 시행이었다.
이로써 법조일원화를 둘러싼 논쟁은 일단 마감되었다. 남은 것은 차질 없는 추진이었고, 지금까지 법에 따라 추진됐다. 그런데 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법조일원화가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위기의 출발점, 법원과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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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모습. ⓒ 공동취재사진
위기의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법원과 국회다. 법원 스스로 법조일원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법조일원화 도입을 약속했다. 사법개혁위원회 당시 법원은 법조일원화의 '전면 실시'를 약속했다. 전면 실시는 당연히 변호사의 경력이 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법원은 지금 '10년 이상'의 경력을 '5년 이상'으로 단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는 법원의 주장을 수용하려고 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는 지난 15일 판사로 임용되기 위한 최소 법조재직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명분은 '현재 제도로는 원활한 판사임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의 이번 결정은 국회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국회는 2011년 법조일원화의 의의와 중요성을 인정하여 '10년 이상' 경력자의 '단계적' 법관 임용을 확정했다. 국회의 당시 결정은 법조일원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국가적 합의로 바꾸는 계기였다. 그런데 지금의 국회는 과거 국회의 결정, 국가적 합의를 스스로 뒤집고 있다.
왜 10년인가
10년 경력은 왜 중요한가. 이 문제는 사법개혁위원회 논의 과정에서도 당연히 다루어졌다. 당시 변호사 경력과 관련하여 5년 경력, 7년 경력, 10년 경력 등 세 가지 안이 있을 수 있지만 10년 이상의 경력이 바람직하다는 점은 다툼이 없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10년 정도의 경력이 되어야만 변호사로서의 자세가 체질화, 내면화된다. 그래야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제대로 지킬 수 있고, 관료의 통제를 배격하여 법관의 독립을 지킬 수 있다. 둘째,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면 법관 임용 이후 소정의 교육을 받은 다음 곧바로 실무에 투입될 수 있다. 특히 항소심 법관을 임용할 때에는 당연히 10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다. 셋째, 법조일원화를 도입하려고 했던 일본변호사연합회의 보고서도 10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10년 이상의 경력은 법조일원화의 필수 내용이다. 단순히 판사임용이 원활하게 잘 되는가의 측면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법원 관료제 개혁의 문제이며 법관의 독립성 보장의 문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법관의 독립성과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사법농단 사태의 재발을 막는 중차대한 문제인 것이다.
법원과 국회, 법무부와 변호사협회는 역사와 역할을 자각해야
법조일원화의 도입에는 모든 관계기관이 책임을 지고 성의를 다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관계기관은 법원, 국회, 법무부, 변호사협회다. 관계기관들 모두 법조일원화가 법원개혁, 사법개혁의 일환이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법원은 법조일원화가 단순히 법관의 임용 방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약속한 법원개혁, 사법개혁의 핵심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지금도 법원 내부와 외부에는 노무현 정부의 사법개혁위원회 논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법원개혁, 사법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 법조일원화를 도입하려고 했던 노력을 상기하기를 바란다.
국회는 법조일원화 자격과 일정을 법률로 못박았던 당시의 상황을 공부해야 한다. 법조일원화는 관료제 법원을 개혁하는 가장 핵심적인 개혁과제였다. 개혁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이명박 정부에서 사법개혁의 거의 유일한 성과로 이룬 것이다. 국회는 과거 선배 의원들이 고심하여 마련한 법조일원화를 무위로 돌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법무부는 국가 법무행정의 중심이라는 자각을 가져야 한다. 법조일원화에 적극 의견을 내야 한다. 법무부도 사법개혁위원회에 참여했고 법조일원화에 대해서 찬성했다. 마치 자신과 아무 관계 없다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법조일원화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한국의 법치주의 수준이 달라진다.
변호사협회는 더욱 심각한 자성이 필요하다. 변호사협회는 법조일원화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있다. 법원의 관료제가 없어져야 법관의 독립이 확보되고 법관의 독립이 확보되어야 법치주의가 제대로 기능한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기능해야 시민의 자유와 인권이 보호된다. 변호사협회는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다. 더구나 변호사협회는 사법개혁 논의 때마다 법조일원화 도입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다. 법조일원화를 변호사 일자리 창출로 본 것은 결코 아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대한변호사협회가 법조일원화 경력 단축에 대해 "판사 임용 지원을 염두에 둔 우수한 청년 법조인들의 법조 진출의 경로도 확장할 뿐만 아니라 법관 구성의 다양성 확보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5년 경력에 찬성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개혁적이지도 않다. 법조일원화를 강하게 주장해온 변호사협회의 역사와 전통에도 어긋난다. 오히려 법원의 관료제를 강화하는 퇴행적인 인식이다.
법조일원화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20여 년을 계속해서 추진해온 법원개혁, 사법개혁의 핵심과제다. 이 때문에 법원을 포함하여 국회, 법무부, 변호사협회 등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추진해왔다. 법조일원화는 법원의 관료제 혁파, 법관의 독립 확보, 법치주의 정착, 시민의 자유와 인권의 옹호를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임용되는 법관의 자격이 최소한 10년이 되어야 한다. 법원, 국회, 법무부, 변호사협회는 법조일원화의 중요성과 역사의 무게에 걸맞게 신중하게 논의를 진행하기를 바란다.
▲ 김인회(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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