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꼼꼼하고 정교하게 아이템을 챙기는 데도 내가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빨리 떨어지는 게 있다. 바로 아빠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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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어쩌다 이발하러 시내로 나갈 때 엄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따라갔지만 항상 아빠 이발 시간보다 길게 장을 보니 아빠의 눈치가 여간 아니다. 차에서 기다리는 아버지는 역정을 내고. 그래서 엄마는 맘대로 시장 한 번을 못 간다. 그 고립된 일상이 길어지면 어쩌다 쌀, 김치 말고 먹을 게 없게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엄마와 장보기는 나의 의무이자 엄마와의 데이트가 된 지 오래다. 볼거리가 많아서 가끔 5일장을 다닌다. 엄마의 소비방식이 장보기를 더 힘들게 했다. 엄마는 오이를 살라치면 시장을 입구부터 끝자락 마지막 오이까지 "얼마에요"를 다 물어보았다.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그대로였다. 시장 입구 쪽으로 되돌아가서 세 번째 오이를 샀다. 내가 보기엔 그 오이가 그 오이인데 말이다.
요즘은 오빠와 내가 연실 먹을 거를 배송해드려서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아하신다. 그러다보니 이번 배송된 과자는 눅눅하지는 않은지? 고등어는 몇 토막 남았는지? 과일은 떨어질 때 안 되었는지? 늘상 궁금했다.
그래서 나의 특기이자 취미, 바로 엑셀로 뚝딱 장부를 하나 만들었다. 그건 바로 '엄마 아빠 먹을 거 택배 장부'이다. 그러고 보니 내 생활비 총 지출 중 엄마 아빠의 먹을거리가 20프로 정도를 차지한다. 진작 별도의 장부가 있었어야 했다.
지난 두 달치 가계부를 다 뒤져서 과일, 간식, 고기, 생선 등 아이템별로 날짜를 표로 기록해놓고 보니 한눈에 들어오고, 계절 음식도 잊지 않고 챙길 수 있게 되어서 효율적이다. 곳간 열쇠 쥐고 있는 기재부 장관이 대단한 나랏일 한 것 같은 심정이랄까. 너무 뿌듯했다.
나름 꼼꼼하고 정교하게 아이템을 챙기는 데도 내가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빨리 떨어지는 게 있다. 바로 아빠 빵이다. 빵 회사에서는 우리 아빠에게 공로상을 줘야 할 것이다. 아빠는 손바닥만 한 단팥빵 두세 개를 매일 자기 전에 드신다. 카스텔라, 초코빵, 샌드위치, 크림빵, 꽈배기 다 사드려봤어도 단팥빵만 못하다고 하신다. 아마 아빠 속은 팥으로 물들어 시커멀 것이라고 엄마랑 농담할 정도이다.
냉동 찹쌀떡과 함께 여름을 나시는 아빠
빵이 떨어지면 아빠는 자식 돈 쓰게 하지 말라며 엄마에게 전화 금지령을 내린다. 그것은 또한 자기 전 엄마의 부엌일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다. 퇴근했는데 회사를 또 가야 하는 상황이랄까.
저녁상 다 치워놓고 드라마 보다가 자면 딱 좋은데, 아빠의 야식을 위해 다시 부엌으로 가 밀가루 반죽하고 뭘 만들어내야 하는 일은 정말이지 얼마나 귀찮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봉지빵을 내가 사 보내드리기 전에는 늘 그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