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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흥산골 시절 장작을 빠개다. ⓒ 박소현
병원 진료
2004년 3월, 이대부속고등학교에서 조기 퇴직한 뒤 곧장 강원도 횡성군 안흥 산골마을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얼치기 농사꾼으로 텃밭을 가꾸거나 뒷산에 가서 군불용 나무를 했다. 밤이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면서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살았다. 꽤 여러 권의 책도 펴냈다.
나는 안흥산골에서 그대로 지내고 싶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 아내가 가까운 원주로 나가자고 하여, 2009년 11월에 이사해 지금은 치악산 밑에서 지내고 있다. 그때 원주로 이사 오게 된 것은 아내의 말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 가까운 곳에 산답니다."
아무튼 나도 남들처럼 별 수 없이 주기적으로 병원을 드나들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점차 들르는 종합병원의 진료 과가 더 많아졌다. 벌써 10여 년째 원주기독병원 내분기과에서 진료 후 약을 처방 받아 복용하면서 지낸다.
그런데, 약 복용이 여간 짜증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 전 진료 때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어린이가 응석을 부리듯이 말했다.
"이제 약 그만 먹으면 안 되겠습니까?"
"어르신, 이름이 많이 익습니다. 무슨 일을 하세요?"
"그냥 글줄이나 쓰면서 삽니다."
그는 내 말이 떨어지자 앞에 놓인 인터넷 모니터에서 내 이름을 치더니 화면을 보면서 말했다.
"그동안 많은 작품집을 내셨네요."
나는 그 말에 얼른 답했다.
"다음 진료 때 한 권 갖다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책은 사서 봐야 합니다."
그는 즉시 내 신간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을 출력한 뒤 조교에게 건네면서 곧장 주문을 의뢰했다.
"제가 원주로 오신 박경리 선생님을 오랫동안 봐 드렸습니다. 아무 말씀 마시고 꾸준히 진료 받고 약 드십시오. 어르신은 그동안 열심히 진료 받은 덕분으로 더 나빠지지는 않았습니다. 자칫 방치하면 시각 장애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어느 친지 한 분이 늘그막에 당뇨망막증으로 고생한 걸 지켜봤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시각 장애가 온다는 건 치명적이다.
"예, 잘 알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군말없이 처방전을 받은 뒤 이즈음도 계속 열심히 약을 복용하면서 지내고 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복음으로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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