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이후 통행금지가 시행되고 있는 호치민의 거리 풍경
이나영
- 봉인된 시간을 살고 있는 고3 딸에게
며칠 전, 네가 말했어.
"엄마, 나 너무 답답해. 그런데 그거 알아? 나 지금이 내 인생의 마지막 고등학교 시절의 여름방학이야..."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 속에서 쿵.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
지난주쯤, 우리 가족 모두가 예민해져 있음을 서로 경험했던 것 같아. 사소한 일로 서운해하기도 하고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쉽게 지치고 상처받곤 했지. 5월부터 호치민에서 계속된 온라인 수업과 외출 제한, 재택근무... 우리가 집에서 부대끼면서 알게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나봐.
'다들 힘든 상황이고 우리만 이런 것 아니니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힘내보자'는, 그런 말들이 주는 에너지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겠지?
어른인 나도 이렇게 마음이 심란하고 감정의 주기가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꽃같은 나이의 너희들이 느끼는 감정은 얼마나 복잡할까. 요즘 낮에도 커튼을 열지 않고 어둑한 상태로 해놓은 너의 방을 살짝 들여다보니 그게 마치 너의 마음인 것만 같아 마음이 또 쓰이는구나.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은 어떨게 될까?' 종종 생각을 해. 마스크와 손세정제가 삶의 한 부분이 된 아이들, 모니터 속 화면으로 친구들을 만나며 살아가는 아이들, 유튜브와 틱톡, 인스타그램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어떤 어른이 될까. 이 아이들이 기억하는 자신의 유년시절은 어떤 것일까. 그 아이들 중에 내 아이들도 있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사춘기, 십대의 아이들.
나의 십대 시절을 떠올려봐. 친구와 만나서 같이 재미난 곳을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콘서트를 갔던 시간들을 생각해. 어른들의 세상을 넘겨다보며 부러워하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기도 했던 그런 시간들이 있었어. 그건, 어른이 되기 전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일들이었는데...
그런 경험이 코로나라는 사태로 모두 다 꽁꽁 묶여 봉인되어버린 나의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 그리고 너희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이 사회를 이끌어가게 될까. 염려스러움이 먼저 고개를 드는 건 아마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거야.
누구를 만나도 마스크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려야 하는 십대 시절을 보내는 딸아. 너의 마지막 여름방학이 이렇게 흘러감을 너무 슬퍼하지만 마. 하고 싶은 일들과 바라는 일들의 목록을 부지런히 챙겨놓기를 바라.
비록 모니터와 액정화면 너머의 세상이기는 해도 네가 만나고 경험하는 세상은 나의 어린시절보다 훨씬 더 넓고, 크고, 무궁무진하며 생생하고 가깝게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잖아. 그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배울 수 있기를 바랄게.
기약없는 하루하루일지라도 이건 영원히 계속되는 건 아닐 거야. 다시 학교가 열리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그날, 친구들 손을 잡고 너희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그 날이 어색하지 않기를.
그저 너의 나이답게 금세 회복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즐겁기를 바라. 지금의 이 날들이 답답하고 한정되어 있는 막막한 시간이 아니라 너희가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많이 떠올려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보는 힘을 가져보자.
이런 상황을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어른인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은 고작 이런 것뿐이라서 조금은 미안해. 그래도 네가 가진 회복력과 긍정의 에너지를 믿어. 적어도 어른이 이미 되어버린 나보다는, 네가 꿈꿀 수 있는 것들이 조금은 더 많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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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기울여 듣고 깊이 읽으며 선명하게 기록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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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이후 통행금지에 기약없는 백신... 여기는 베트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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