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화 대표, 강대진 선생 등 항일투사 20명 정부 포상 신청

13명은 새로 신청, 7명은 재심의 청구 ... 부산경남지역 인사 해당

등록 2021.08.04 09:04수정 2021.08.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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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사료연구가 추경화 충효실천운동본부 대표가 진주문화원(원장 김길수)과 함께 항일투사 20명을 발굴해 정부에 포상신청했다.

추경화 대표와 진주문화원은 지난 7월 말에 국가보훈처(중부보훈지청)에 경남·부산 출신 항일투사 13명에 대해 포상신청하고 7명은 재심의 청구했다고 4일 밝혔다.

재심의 청구는 손우상, 강영호, 김병성, 황원방, 조삼수, 전갑봉 항일투사다.

이번에 새로 신청된 항일투사는 모두 13명으로, 정성호(鄭成鎬, 정성오 鄭聖五, 1898~1973) 선생은 진주 3.1운동을 총지휘했다는 것이다. 그는 1919년 3월 18일 시작된 3.1운동 때 다음날인 3월 19일 오전 11시경 진주 평안동과 대안동 사이 노상에서 북을 치며 행진할 때 선두에서 시위를 지도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6월 12일 진주법원에서 징역 6월형이 언도되고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사천 봉림동 출신인 강대진(姜大振, 1916~1966) 선생은 박이기(건국훈장 추서), 이금복(대통령 표창), 정성기(건국포장 추서) 등과 함께 1939년 삼천포농민조합에 가입해 항일애국 활동 중 일경에 체포되어 진주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부산 동래 출신인 김종엽(金鍾燁, 1897~1963) 선생은 기장 3.1운동에 동참하였고 상해 임시정부에서 애국청년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일제를 타도하기 위해 일본 대판에서 불온 전단지를 배포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대판지법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1922년 11월 25일 출옥하였다.


김규엽(金圭燁, 1908~1978) 선생은 항일투사 김종엽의 아우로 기장면 대라리에서 동래청년동맹에 가입해 1928년 9월 국제무산대회에 관련된 불온 전단지 4장을 배포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부산지법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언도되었다.

고성 삼산면 출신인 김영찬(金英贊, 1889~1954) 선생은 1919년 3월 22일 벌어진 고성3.1운동을 지도하고 일경에 체포되어 마산지법에서 태형 60도를 맞고 석방되었다.

고성 영현면 출신인 박우상수(朴又尙守, 1906~1973) 선생은 1931년부터 고성농민조합 임원으로 농회비와 축산조합비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연하고 야학교를 설치해 무산자녀를 가르치고 소작쟁의에 관여하다 일경에 잡혀 진주법원에서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박성애(朴晟愛, 1877~1961) 선생은 진주 출신으로, 진주교회 초대 목사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혈성단(단장 홍수원 건국훈장 추서), 박덕실(대통령 표창 추서) 등과 50여 명을 모집해 군자금을 모아 송금하고 대한국민회 소속 경남전도회를 통해 전단지 배포하다 체포되어 5개월 16일간 옥고를 치렀다.

남해 출신인 유덕천(柳德天, 1904~1973) 선생은 임시정부를 위해 혈성단을 조직할 때 홍수원(건국훈장 추서), 박덕실(대통령 표창) 등과 함께 활동하고 광림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1927년 신간회 진주지회 상무간사를 역임하고 학생시위 때 배후 조종자로 체포되었고 애국계몽 강연으로 수시로 체포되어 엄중한 조사를 받았다.

함안 출신인 이현속(李鉉續, 1900~1943) 선생은 일제가 '내선일체', '황민화 정책', '국민총동원'.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진주 배돈병원 서기를 근무 중 목숨을 걸고 반대하다 평양감옥까지 끌려가 혹독한 고문으로 옥중순국했다.

사천 출신인 장준(張駿, 1915~1957) 선생은 한계수(건국포장 추서), 황진생(건국포장 추서), 이증삼(건국포장 추서) 등과 함께 진주고등학교 독서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광주학생 의거에 동참하는 시위와 비밀활동 등으로 수차례 정학과 퇴학 처분을 받았고 진주법원에서 집행유예 3년형이 언도되었다.

산청 단성면 출신인 최보림(崔普林, 1900~1984) 선생은 김영숙(대통령 표창 추서). 정태윤(대통령 표창 추서). 권숙린(건국훈장 추서) 등과 함께 산청단성 단계 3.1운동을 지도하고 일경에 체포되어 진주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익환(丁益煥, 1848~1918) 선생은 남해 창선면 출신으로, 동학란에 참전하고 의병을 모아 창선으로 귀향하자 일본 헌병 3명이 출동하여 총격전이 전개되었고 2명이 현장에서 전사 순국하고 본인은 생포되어 진주감옥에서 3년간 갇혀 있었다.

부산 동래구 출신인 황용하(黃龍河, 1899~1948) 선생은 1919년 3월 13일 동래고보 학생들이 시위할 때 동참하고 시민들에게 동참을 호소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법에서 징역 4월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항일투사 #진주문화원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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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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