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파크시티가 포함된 맨해튼 전경. 록펠러 재단의 자손인 넬슨 록펠러시장이 70년대부터 공유수면을 매립한 배터리파크시티라는 12만평의 비즈니스타운을, 토지임대를 통해서 1만4000세대의 주거를 포함한 개발을 진행하면서 성공적인 도심을 조성하였다.
BPCA(Battery Park City Authority)
뉴욕 하고도 맨해튼, 세계무역센터가 자리잡은 인근 해변가 매립지 약 12만 평은 도시 설계의 디자인 면에서도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 받는다. 이 지구는 록펠러 재단의 자손인 넬슨 록펠러 시장이 있던 1970년대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공유수면을 매립한 배터리파크시티공사는 토지임대를 통해 장기에 걸쳐 건설비용을 갚았다. 국채금리가 5~7%로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았던 당시로는 획기적인 방안이었다. 이후 1만4000세대의 주거를 포함한 개발을 진행하면서 성공적인 도시조성을 이뤄냈다. 토지임대가 매각보다 장기적으로 더 나은 방식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초기에 2억 달러의 채권을 발행하여 오일쇼크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199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수익을 내기 시작하여 매년 1억~2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2014년까지 모든 국채를 상환했음에도 2020년까지 누적 수익이 무려 38억 달러(약4조 원)에 이르게 되었다. 작년 한 해만 하더라도 뉴욕시에 2억 3천만 달러의 재정수입을 안겨다 주었다. 입주자의 재산세를 대납해주고 저소득층 임대주택 등 지속적인 재정 기여를 하고 있다.
매립 후 일찌감치 시장에 매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땅을 매입하고 이자를 감당할만한 재력가가 일방적으로 이득을 봤을 것이다. 하지만 토지임대를 했기 때문에 적정한 시장지대를 받아서 공익으로 환수할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와 같은 경제의 선순환 효과를 누리고 있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싱가폴이다. 싱가폴은 HDB(주택개발국)주택이 토지임대주택으로 활성화 되어 있다. 80% 넘는 국민들이 살고 있는 토지임대주택(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이 나뉘어져 있는 주택으로, 정부가 토지 소유권을, 주택을 분양 받는 사람이 건물 소유권을 갖는다) 체제에 의해 시장 왜곡이 발생하지 않고 돈이 필요한 곳에 쓰이는 시장경제를 가동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두각을 보이는 산업이 없음에도 현재 국민소득이 6만 달러로 세계 톱수준이다. 배터리파크시티는 그런 개념 위에 지대시장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킨 것이다. 싱가폴보다 한 수 위다.
2021년 현재 대한민국은 땅값이 갖는 허수적 왜곡 때문에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무리하게 집을 산 사람은 수입의 태반을 은행이자 갚는데 쓰고 있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한계상황에 내몰린 가구가 늘고 있다.
이는 택지를 개발해서 분양가를 낮춰 주택을 대량 공급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매각 분양은 결국 이자부담이 가능한 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만든다. 토지는 공공재이자 한정재다. 먼저 개발해서 분양받은 기성세대가 일방적으로 독식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자산증식 욕망에 불을 질러 이득을 편취하고 있는, 4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는 한국의 주거·주택 시스템이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이자 능력 부담자, 즉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다. 젊은 세대는 이런 일방적 구조에 분노하는 것이다.
지대시장이 살아있는 한국 전세제도의 지혜
성장하는 시장경제에서 토지를 소유하는 것은, 토지를 사용해서 얻는 가치보다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땅값의 소유비용인 이자에도 또 다시 이자가 붙으므로 사용지대보다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유되는 토지는 경제가 성장하는 한 계속 땅값이 성장할 수밖에 없다. 미래가치를 앞당겨서 현물화하므로 금융파생상품이나 선물시장처럼 투기적 요소가 실물경제를 왜곡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토지경제의 속성을 제대로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의 전세제도부터 살펴보자. 외국학자들이 신기하게 여기는 전세란 무엇인가? 전세란, 매월 혹은 매년의 임대료를 자본금으로 환산하여 일시불 보증금으로 내어 임대료 납부를 대신하는 시스템이다. 그러고는 만기에 보증금을 되찾아 가는 방식이다.
어떤 장점이 있길래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되었나? 첫째, 집 지은 후 팔지 않고도 비용의 상당부분을 일시에 조달할 수 있다. 빈 땅 갖고 있는 사람이 집을 지어서 전세를 놓으면 전세금으로 건축비를 충당할 수 있는데, 전보다 땅값이 올라간다는 매력이 있다. 둘째, 세를 놓은 자는 월세와 달리 임대료를 매달 받을 수 있을지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셋째, 세입자는 목돈을 보전할 수 있다. 이런 민중의 지혜가 모인 것이 한국의 전세제도다.
이런 저런 장점이 많지만, 한편으로 세입자들은 늘 불안하게 살고 있다. 물가 때문에 임대비용이 오른다든지, 이자율이 낮아져서 그 자본액이 커지면 전셋값이 폭등해버리기 때문이다. 장기 거주를 보장받지 못하고 소유자의 간섭을 받는 것이다.
이사를 하면 보이지 않는 손실이 더 크다. 주거불안정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래서 '내 집 마련'이라는 염원이 생긴다. 자산증식이 아니라 안정적인 거주로서의 '내집처럼'이란 염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공임대주택을 먼저 생각해보자. 저가임대는 복지문제엔 도움을 주지만 부동산 문제의 근본해법은 되지 못한다. 시세가 아닌 저가 임대료는 입주자에게는 좋지만 무임승차의 한계는 그대로다. 입주자격이 되어야 하고 거주에도 조건들이 따라 붙게 마련이다. 또 공급자나 정부는 채산성이 맞지 않고 재정부담이 커진다. 가령 10년 후 분양하는 공공임대주택은 토지매각 분양이 연기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토지임대주택은 시장가격이면서 소유가격에 반값 정도이므로 복지와 부동산 문제 해결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 건물은 현물로 소유하고 토지는 임대로 살게 되면 시장가격의 반값에 가까운 값에 거주하게 된다.
'내집처럼' 평생주택_전세형 토지임대주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