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도감
황소걸음
지난봄에 세상을 살면서 처음으로 나무 세 그루를 심었습니다. 오십 년을 훨씬 넘게 사는 동안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를 얼마나 썼을까요? 공부방을 가득 채운 책들만 해도 나무 수백 그루는 베어내지 않았을까 싶은데... 무심하게도 그동안 나무 한 그루 심지 않고 살았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나무를 심게 된 것은 지난여름 이맘때 자전거 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난 아들이 그리워서였습니다. 아들은 아주 어릴 때 자기는 '하얗고 큰 꽃'이 좋다고 하였는데 아이가 말한 꽃은 봄에 피는 목련이었습니다. 또 아들은 하얀 꽃잎이 비처럼 흩날리는 벚꽃을 좋아하였습니다.
일터 근처에 산속에 목련 묘목 두 그루와 키가 4미터쯤 자란 빼빼 마른 왕벚나무 한 그루를 사다 심었습니다. 묘목장에 힘없이 서 있는 벚나무는 옮겨 심은 지 이틀 만에 하얀 꽃을 수줍게 피워냈습니다. 이미 다른 벚나무들은 꽃을 활짝 피웠다 지고 파란 잎이 기운차게 자라날 때였습니다.
제가 심은 벚나무도 파란 잎이 활짝 피어 있어 내년 봄에나 꽃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뒤늦게 핀 하얀 꽃 여섯 송이가 나무 심은 사람에게 소박한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난생처음 나무를 심고 만난 나무 이야기 책
벚나무 가로수가 워낙 많고 봄이면 벚꽃이 지천에서 만발하는 도시라 오히려 한 번도 자세히 본 일이 없는데, 제가 심은 나무에서 늦게 핀 꽃을 보느라 처음으로 가까이서 벚꽃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묘목을 심은 목련은 여름이 되자 두꺼운 잎을 내놓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과연 내년 봄엔 하얀 꽃을 피울 수 있을지 기다려집니다.
난생 처음 나무 세 그루를 심은 그 봄이 끝나갈 때쯤 동화작가이자 생태작가인 이영득이 쓴 책 <나무 이야기 도감>이 내게로 왔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영득 선생님이 <나무 이야기 도감> 책을 낸 것과 봄에 내가 나무를 심은 것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우연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자 머리말 제목이 "나무랑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이었습니다. 이제 막 처음으로 나무와 친해지기 시작하는 저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이영득 작가는 여러 편의 동화 책을 썼고, 풀꽃, 산나물, 꽃과 풀들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저도 그동안 꽤 많은 이영득 선생이 쓴 책들을 <오마이뉴스> 서평으로 소개하였습니다만, 이번 책처럼 제 삶과 맞닿은 글을 쓰게 된 것은 처음입니다. 이제 막 나무와 첫사랑을 시작하는 저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라 읽기 전부터 설레었고 읽는 내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이 책에는 모두 121종의 나무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장 먼저 찾아 읽은 나무 이야기는 짐작하시는 대로 '목련'과 '벚나무'였습니다. 이날 처음 목련은 나무에 피는 연꽃 같아서 나무 목(木), 연꽃 연(蓮)을 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목련과 백목련이 다른 꽃인데 나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백목련도 그냥 목련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직박구리가 갓 피려는 백목련 꽃잎을 쪼아 먹는 걸 봤어요. '새가 꽃잎을 다 먹네!', 새도 봄이 오길 기다렸나봐요. 그 뒤 꽃을 볼 때면 어떤 손님이 오나 더 눈여겨봤어요. 동박새는 동백나무, 매실나무 살구나무에서 꽃꿀을 먹고, 직박구리는 목련, 백목련, 개나리 꽃잎을 쪼아 먹더라요." (본문 중에서)
이런 문장은 꽃과 나무와 새들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입니다. 제주도 숲에는 절로 자라는 목련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한라산 교래자연휴양림에는 첫눈에 반해 그 곁을 떠나지 못할 만큼 멎진 목련이 있다는데 가까운 봄에 꼭 한 번 보러 갈 참입니다.
나무에서 벚꽃이 피는 봄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