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 시민기자가 펴낸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관련 이미지.
꿈꾸는인생
이 땅의 노동문제와 사회 여러 곳의 부조리, 개인의 억울한 사연까지 취재하고 보도하는 방송국에서 정작 그들 내부의 문제들은 쉬쉬하고, 묵인하고, 들여다보지 않는 현실. 그 중심에 있었던 작가는 진짜 쓰고 싶었던 단 하나의 오프닝을 쓰지 못해 일을 그만둔 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그 책은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어떤 이야기는 생각도 감정도 마음도 넘쳐 한 페이지에서 한 권의 분량이 되기도 한다.
방송에 성역은 없다. 방송국 카메라와 마이크를 잡은 이들은 대통령도 교황도 만난다. 머나먼 타국의 대규모 시위나 내전 지역도 방문한다. 이들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하지만 가지 않는 곳은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꺼 버리는 단 한 곳. 바로 '방송국'이다. 방송국 안에서 벌어진 일을 방송은 고발하지 않는다. - 222p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사실 이 책은 나오지 않았어야 맞다고. 그러기엔 방송가의 부조리는 차고 넘쳤다. 나 역시나 방송국에서 일하며 자주 보았고, 당했고, 한탄했다.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 착취와 관련된 뉴스를 보도할 때마다 방송국 내부의 비정규직들을 자주 말하곤 했다. 우리 회사부터 취재해야 할 것 같다고.
하지만 작가는 책을 통해 단지 본인의 부당해고와 적은 임금, 불안한 처우가 부당하다고 외치는 게 아니다. 다른 프리랜서 작가, 피디, 리포터, 아나운서 등 방송가의 모든 '사람'에게 시선을 넓혔다. 연대했고, 기록했다. 그래서 이 책은 꼭 나왔어야 할 책이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은 기득권의 언어다. 논리와 혁명에 대응하는 가진 자의 마스터키다. '원래'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직까지 여성들은 투표소에 들어갈 수 없고, 흑인과 백인이 따로 앉아야 했을지도 모른다....이제 방송가 노동자들에게 호의가 아닌 당연한 권리를 찾아줄 때다. 과정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시작은 어렵지 않다. '원래'를 뒤집으면 된다. 프리랜서는 원래 다 그렇다는 문장의 '원래'를, 방송가는 원래 이런 것 몰랐냐는 문장의 '원래'를 지우고 다른 해법으로 대체해 나가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방송이라는 토양에 뿌리 내린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수많은 '원래'를 하나하나 지워나가자고. - 175p
비록 나와 하는 일은 다르지만, 방송국 안의 같은 '프리랜서'로서 겪었던 경험과 느꼈던 생각을 이렇게나 선명하게 기록해 주니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불편하고 힘든 이야기들은 기억하는 것조차 괴로워 자주 사라지고 잊히기 마련인데, 그 쉽지 않은 일을 애써 해낸 작가의 용기에 응원을 보낸다. 이런 기록은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하니까. 나는 이런 흔적이 좀 더 나은 방송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방송이 부서지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일을 하다 병들거나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꿈꾸는 일을 한다는 긍지만으로 착취가 정당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비상식이 업계의 불문율로 통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일하는 모두가 노동자로 존중받기를 바란다. 시청률도, 한류도, 해외 판권도, 베스트셀러도 이 뒤에 왔으면 좋겠다. - 11p
이 문장이 아마도 작가가 이 책을 쓴 비장하면서도 다정한 마음일 것이다. 이 세상 모든 프리랜서들이, 노동자들이,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 방송가의 불공정과 비정함에 대하여
이은혜 (지은이),
꿈꾸는인생,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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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안에서... 방송작가가 쓰지 못한 유일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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