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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없이 살아보았습니다

[탄소 다이어트] 계단 오르기... 지속 가능한 실천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

등록 2021.08.16 11:23수정 2021.08.1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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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그 주범으로 이산화탄소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외치며 탄소발자국 지우기에 나서고 있는데요. <오마이뉴스>는 '탄소 다이어트'에 나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기다리겠습니다. [편집자말]
지구가 뜨거워지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기후 위기에 관한 정부 협의체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늦어도 20년 안에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높아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3년 전에 제시한 2030~2052년보다 10년 앞당겨진 것이다. 특히 이번 보고서에선 그 원인이 인간에게 있다고 밝혔다.

"인간의 영향으로 대기와 바다, 육지가 뜨거워졌다는 건 명백합니다. 기후 변화는 극한의 무더위, 집중호우, 그리고 가뭄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 판 마오 자이 IPCC 워킹그룹 공동의장

실제로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극심하다. 미국, 그리스, 터키 등은 산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엔 시베리아 삼림에도 불이 났는데 세 국가의 산불 면적을 합친 것보다 넓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에는 지난해 전례 없는 최장 장마에 이어 올해는 폭염이 찾아왔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7월 전력 거래금액이 전년 동기 대비 약 9000억 원 늘어 5조 원을 넘어섰다.

이런 상황 때문에 세계 각국은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있다. 탄소 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나는 탄소 배출과 기후 변화의 주범 중 한 명으로서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일명 계단으로 하는 탄소 다이어트다.

[아침] 마주한 풍경이 사뭇 달랐다
 
 출구로 올라가는 길. 에스컬레이터에 비해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훨씬 적다

출구로 올라가는 길. 에스컬레이터에 비해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훨씬 적다 ⓒ 박지윤

 
매일 아침 9시까지 여의도로 글쓰기 수업을 나간다. 아침 8시 반,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승강장 스크린도어에서 에스컬레이터까지 늘어선 사람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겠지만 옆쪽에 계단이 있다. 3층 높이의 긴 계단이다. 에스컬레이터의 유혹을 뿌리치고 위를 올려다봤다. 열 사람 정도 있었는데 출근 시간에 쫓겨, 줄 기다릴 시간도 없는 게 아닐까 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서 왔는데 계단까지 오르려니 의욕이 없었다. 듣던 라디오를 끄고 아이돌 노래를 틀었다. 빠른 비트 덕분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평소 이용하던 5번 출구 앞에서 멈칫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이 없다는 걸 깜빡했다. 목적지까지 10분을 걸어야 하는데, 시간이 벌써 8시 40분이다. 얼른 다른 출구를 찾아야 한다. 계단 출구가 한군데 있었다. 나가면 어디인지도 모른 채로 무작정 올랐다. 상가 통로를 걸어 작은 회전문을 통과하니 지상과 연결되는 계단이 또 있다. 완전히 나온 뒤 주위를 둘러봤는데 차도 건너편으로 5번 출구가 보였다.

원래 다니던 길과 400m 정도 멀어졌을 뿐인데 마주한 풍경이 사뭇 달랐다. 사람 수가 훨씬 적었고 도로변을 따라 흡연구역 대신 가로수가 서 있었다. 덕분에 인상 찌푸릴 일이 하나 줄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구름과 하늘의 색깔이 아름답다

창 밖으로 보이는 구름과 하늘의 색깔이 아름답다 ⓒ 박지윤


"괜찮아요, 계단으로 가요!"


경비 아저씨는 로비에 사람이 오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대신 눌러주시곤 한다. 아저씨가 건물로 다가오는 날 보시더니 검지를 들었다. 나는 문 건너편에서 손으로 X 표시를 했다. 교육원은 건물의 맨 꼭대기인 7층이다. 그동안 고민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는데 오늘은 안된다.

아저씨가 더운데 타고 가라고 한 번 더 물었다. 꾹 참고 고개를 저었다. 비상구가 후텁지근했다. 계단을 오르며 새삼 건물이 새롭게 다가왔다. '오후에 맛있는 냄새가 나더니 여기였구나', '은행도 있네' 3개월 넘게 이곳에 왔지만 다른 층엔 관심이 없던 것이다. 그러나 이도 잠시, '도착하자마자 물 마셔야지!'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침부터 땀 낼 일 있어? 엘리베이터 놔두고 왜 고생해."

7층까지 마지막 한 계단을 남기고 친구를 마주쳤다. 뒤이어 등장한 선생님도 "왜 굳이?"라며 지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건 사서 고생인 일인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탄소 친화적인 생활과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점심] 비상 통로로만 쓰이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계단
 
 비상 계단을 걸어 얻어낸 음료 (feat. 리유저블 컵)

비상 계단을 걸어 얻어낸 음료 (feat. 리유저블 컵) ⓒ 박지윤

 
커피를 사러 자주 가는 백화점에 갔다. 지하 2층에 가야 하는데 눈앞엔 에스컬레이터뿐이었다. 불이 꺼진 통로에서 비상계단을 찾았다. 비상구 문을 열었는데 시멘트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오면 안 될 곳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내려가는 동안 누군가 와서 나가라고 할까 봐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목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따가 다시 와야 하는데...' 계단 챌린지를 하면서 심장이 쿵쾅댈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난 그저 계단을 오르고 싶었을 뿐인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계단은 비상 통로로만 쓰이고 있었다. 계단의 위치, 내부가 고객들이 편하게 오고 다닐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자주 이용되기엔 무리로 보였다.

[귀가] 처음 오른 아파트 계단
 
 하루 동안 계단을 찾아다니며 49층을 올랐다

하루 동안 계단을 찾아다니며 49층을 올랐다 ⓒ 박지윤

 
'아차!'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뻔했다.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게 처음이었다. 집에 도착해 오른 층수를 세어 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49층, 내일은 50층을 돌파하리라. 생각해보면 내가 계단에 익숙했던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엘리베이터에 갇힌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1년 동안 열심히 계단으로만 다녔다. 그런데 어느새 또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계단 오르기로 실천한 탄소 다이어트, 모든 다이어트가 그렇듯 지속 가능한 실천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계단이 아니어도 좋다. 대신 어쩌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각자의 탄소 다이어트 방법을 찾아보자.

피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이 말했다. "우리가 강하고 빠르게, 지속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면 여전히 해결할 수 있다."
#탄소중립 #계단오르기 #탄소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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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박지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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