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시각으로 16일 마크 티센이 올린 트위터 글. 이 글에서 그는 "만약 남한이 이 같은 지속적인 공격 하에 놓인다면, 그들은 합중국의 도움이 없어지자마자 신속히 붕괴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마크 티센 트위터 갈무리
한국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비유한 미국 언론인의 글이 논란을 일으켰다. <워싱턴포스트>에 칼럼을 쓰는 마크 티센(Marc Thiessen)의 트위터 글이 바로 그것.
아프간 전쟁을 수행한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티센은 16일 트위터에 "만약 남한이 이 같은 지속적인 공격 하에 놓인다면, 그들은 합중국의 도움이 없어지자마자 신속히 붕괴할 것(If South Korea were under this kind of sustained assault, they would collapse just as quickly without US)"이라며 "우리 없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미국 동맹국은 사실상 없다"라고 썼다.
한국 같은 나라도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아프간 정부군처럼 될 수 있다는 이 글의 함의에 주목한다. 티센이 한국을 과소평가하진 않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의도는 전쟁의 본질을 흐리는 데 있다. 아프간 전쟁의 당사자는 아프간 정부군과 탈레반이며 미국은 후원자일 뿐이라는 논리가 그의 말 속에 전제돼 있다. 지난 5월부터 미군이 철수를 시작한 것이 아프간 정부군의 패배를 초래했으며 미국은 패배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바이든의 속내
티센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공식 언명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보인다. 한국 시각으로 17일 오전 6시 2분인 미국 동부 시각 16일 오후 4시 2분에 발표한 그의 발언에서도 그런 생각이 담겼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논평(Remarks by President Biden on Afghanistan)'이라는 제목의 발표문은 애초에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을 아프간에서 내쫓기 위한 것이었다는 견해를 드러낸다.
바이든은 "우리는 2001년 9월 11일 우리를 공격한 자들을 잡아들이고 알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을 우리를 재차 공격할 기지로 삼지 못하도록 확실히 해두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약 20년 전에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라며 자신이 부통령이었던 2011년에 이 목표가 성취됐음을 은연 중에 표시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를 현저히 약화시켰다. 우리는 빈 라덴에 대한 추격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를 잡았다. 그것이 10년 전이었다.
그런 뒤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의 임무는 결코 국가 건설이 아니었다"라며 "통일적이고 중앙집권화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서구형 민주주의국가를 아프간에 수립하는 것까지는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현 사태의 책임은 아프간 국민들과 아프간 정부에 있다고 짚었다. "아프가니스탄 정치 지도자들은 포기했으며 나라를 떠났다" "싸우려고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보이던 아프간 군대는 무너졌다" "아프간 군대가 스스로를 위해 싸울 의지를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미국 군대는 싸울 수도 죽을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등의 발언을 했다. 이런 말들을 통해 미군 철수를 합리화한 것이다.
바이든의 말에 따르면, 미군 특수부대가 빈 라덴을 사살한 2011년 5월 2일 미국이 이 전쟁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2021년 현재 벌어지는 사태는 '싸우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스스로를 위해 싸울 의지가 없는' 아프간인 들의 실패로 귀결된다는 말이 된다. 아프간인들이 스스로를 돕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이 철수할 수밖에 없으며 패배의 장본인은 아프간 정부군이라는 이 같은 논리는 마크 티센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9.11 테러 주역인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면서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2001년 10월 7일 당시, 아프간을 이끈 정부는 지금의 아프간 정부군이 아니었다. 1996년부터 이 나라를 이끈 탈레반이 2001년 당시의 아프간 정부였다.
지금의 아프간 정부군은 이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전쟁 도중에 미국에 의해 만들어져 탈레반과의 싸움에 나서게 됐을 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에도 전쟁의 주체는 미국과 탈레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패자와 승자는 이 둘 중에 있을 수밖에 없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 자신들의 전쟁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