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오두마을 이장의 집오두마을 이장 한대윤이 한옥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한대윤
웃픈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다. '서울 말고는 다 시골'이라는 말. 한걸음 나아가 '수도권과 비(非)수도권을 오갈 때는 여권을 발급해야 한다'는 농담도 있다. 그만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격차가 크다는 의미이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다가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터라 학생일 때는 제대로 된 '시골살이'를 해본적이 없다. 다만 대학 진학 후 매년 갔었던 '농활'이 시골생활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농활에서 뵀던 '형님'들의 말씀이 기억난다.
"나이 들어서 귀농하고 싶다고? 오지마라! 올 거면 젊어서 와!"
농촌은 항상 젊은 사람이 없다는데 왜 없을까? 농활을 다녀온 뒤엔 더욱 궁금했다. 서울살이와 시골살이 모두를 고민해보게 되는 계기였다.
6년간의 서울살이
청년이 겪는 서울살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는 말이 있다.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수도인 만큼 누구나 서울을 바라보며 진학, 취업을 하는 것에 큰 의문을 갖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청년들 대부분은 살면서 한 번쯤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상상을 해볼 거라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권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 다니기 전까지 약 6년 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서울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빼곡한 하루하루. '도시의 일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버스, 지하철에 가득가득 실린 사람들이다. 대학생들은 강의실에서도 식당에서도 빼곡하게 앉아 생활을 이어나간다. 높은 인구 밀도는 닭장 속에 갇힌 닭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물리적인 빼곡함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빼곡함도 느낀다. 하루 계획을 분단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 더 정확한 표현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가 아닐까 생각한다.
두 번째, 비싸고 좁은 집. 가정 형편이 정말 넉넉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집이 좁고 여건이 열악하다. 대학생들은 월세 들어 사는 건 물을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며 발을 뻗을 수 없는 집, 소음이 끊임없는 집, 환기가 안 되는 집, 심지어는 물이 새는 집 등에서 산다. 이런 열악한 주거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정도로 집값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세 번째, 도시공해. 공기 오염, 빛 공해, 소음 공해 등 사람이 많다 보니 자연히 도시공해가 생긴다. 매일 저녁마다 식당거리엔 쓰레기가 한 가득 쌓여있고 골목에선 맡고 싶지 않은 냄새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또한 밤낮을 가리지 않는 빛과 소음, 배기가스로 인한 공기오염은 피하기 힘든 일이다.
네 번째, 많은 기회. 위와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서울로 모여드는 이유는 '기회'라고 표현하고 싶다. 질 좋은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기회,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람과 함께 하는 모든 일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나는 서울살이 최대의 장점인 '기회'에 의문이 생겼다. 많은 기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회를 얻으려는 사람 또한 많기 때문에 경쟁이 생기곤 한다. 매년 알바 자리 구하는 것만 해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을 느낀다. 청년들이 널리고 널려있으니 스스로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중반 당시에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또래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누군가 "10년, 20년 혹은 평생을 서울에서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쉽게 답할 수가 없다. 내가 아직 서울에서 나의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청년들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대체되곤 하는 구조가 서울에 숨겨진 모습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서울에서 제공하는 많은 기회도 결국 '서울'에 한정된 기회였다. 도시 생활만 해본 나는 견문을 더 넓히고 싶었다. 그러던 중 시골살이를 제안 받았다. 함평으로 귀향해서 식용 굼벵이 사육을 하신다는 40대 선배의 제안이었다. 고민할 것 없이, 나는 곧바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내가 스물네 살 때의 일이다.
3개월, 1년, 3년... 그렇게 나는 정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