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많은 걸 어떻게 껴안고 살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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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정이 급하여 10평도 되지 않는 집에 네 가족이 들어가 월세살이를 했다. 들어가지 않는 짐들을 지인의 가게 창고에 보관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가게가 문을 닫더니, 건물에 유치권 행사 현수막이 붙었다. 나중에 다시 그 건물을 찾았을 때 그곳은 폐쇄된 상태였고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은 다 철거되고 말았다.
그 후, 건물 주인은 바뀌었고, 지인은 연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잃어버린 물건들이 밤마다 머릿속에 떠올라 몇 날 며칠,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문득 밤공기가 서늘해졌을 때 좋아하던 스웨터가 보이지 않으면, 오랜만에 차려입은 날에 언니가 보내 준 구두가 보이지 않아 집을 나서지 못하거나, 삶의 온도가 몇도 떨어져 기운이 없던 그날, 감기약 같던 시집이 책장에 더는 없는 걸 알게 되어 난 순간순간 잃음을 앓았다.
"증명서와 허가증, 설문지와 자격증이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었으면.
내가 한 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세상에, 태양이 저물고 있나 보군.'
시계여, 강물에서 얼른 헤엄쳐 나오렴.
너를 손목에 차도 괜찮겠지?
내가 한 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넌 마치 시간을 가리키는 척하지만, 실은 고장 났잖아.'"
제대로 인사하고 보냈다면, 충분히 헤어짐에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좀 나았을까? 언젠가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에서 강박증 있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더는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창고를 대여해 보관하던 에피소드를 보고 너무 부러워 마음이 아린 적이 있다. 한 번씩 내가 잃어버리거나, 급히 버린 것들을 다 모아 놓고 아쉬움 없이 바라보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만약 천국이 있다면, 먼저 떠난 내 물건들이 머무는 그곳일 것이다.
곧 떠나올 나를 기다리며 우리끼리 아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있는 내 손때가 묻은 그것들. 다 쓰지 못한 12색 색연필과 사인펜, 마른 장미 꽃잎이 장식된 생일 카드, 중학교 졸업식에서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헤어진 친구가 전해준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있어서 더 귀해진 물건들.
"바람이 빼앗아 달아났던
작은 풍선을 다시 찾을 수 있었으면.
내가 한 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쯧쯧, 여기엔 이제 풍선을 가지고 놀 만한 어린애는 없단다.'"
'그럼에도 사람과의 이별보다 물건과 헤어지는 일이 더 아쉬운 건 진짜 '끝'이기 때문이다. 기능을 못 하면 쉽게 버려지고 그대로 잊힌다. 하지만 그 기능 뒤에는 나와 함께한 시간이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여 있다. 사기 전의 고민과 받아볼 때의 설렘이, 매일매일 서로가 예전 같지 않음을 확인하고 토닥이며 버티던 순간이.
8월엔 온라인으로 1일 1폐 모임에 참여했다. 하루에 하나씩 버리며 집과 내 안을 정리하고, 버린 것을 매일 인증하는 모임이다. 천천히 버릴 것을 찾으며 이번엔 좀 더 신중하자, 제대로 된 애도를 하자 마음을 먹었다.
하나하나 꺼내 재활용이 가능한 것과 폐기물 신고해야 할 것, 종량제 봉투로 들어갈 것을 분류하며 느려도, 제대로 인사한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내 오랜 친구, 나 또한 언젠가 너를 따라가겠지. 그래도 바라본다. 기능보다 마음이 오래 더 남기를. 18년을 함께한 전자레인지, 색 바랜 별자리 지구본, 이제 돌아가지 않는 하늘색 선풍기.
"자, 열려진 창문으로 어서 날아가렴.
저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렴.
누군가 제발 큰 소리로 "저런!"하고 외쳐 주세요!
바야흐로 내가 와락 울음을 터트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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