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100년 대결전... 최종승자는? ⑦

중미의 관세전쟁, 양차대전의 비극을 재현할까

등록 2021.09.06 09:47수정 2021.09.0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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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관세를 주고 받으면 교역량이 줄고 물가만 올라 소비자가 손해

자본주의국가간의 경제전쟁은 보통 무역전쟁이다. 가장 전통적인 무역전쟁은 국가가 상대 국가의 상품 가격에 세금을 부과하여 수입량을 감소시키는 관세전쟁이다. 관세전쟁은 교역량을 감소시키고,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서 보듯이 관세가 없는 식민지 시장 쟁탈전을 불러 일으켜 전쟁의 원인이 된다.

1860년 '콥든-슈발리에 협정', 즉 영불통상조약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는 상호관세를 낮추었다. 그로 인해 무역량이 거의 두 배로 증가하였다. 그런데 1871년 통일을 이룬 이탈리아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프랑스와 맺은 무역협정을 1886년 파기하고 프랑스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물렸다.

이에 프랑스 역시 보복에 나서 1892년 자국의 농산물을 값싼 이탈리아의 농산물로부터 보호하고자 '멜린 관세'를 부과하였다. 양국이 보복관세를 주고받자 그 여파로 인해 영국과 프랑스의 콥든-슈발리에 협정은 사실상 파기되었다. 관세 부과로 인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교역이 급감하고 프랑스의 식품 물가가 25% 이상 올랐다.

관세가 없는 식민지 쟁탈, 동맹국 확대 경쟁으로 1차 대전과 2차 대전 발생

이탈리아는 프랑스와의 무역 전쟁에서 수출량 급감으로 프랑스보다 더 많은 피해를 보았다. 특히 이탈리아가 보복관세를 포기하였지만 프랑스는 계속해서 이탈리아에게 보복관세를 부과하였다.

이에 이탈리아가 프랑스 대신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가까워지면서 제1차 세계대전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 이처럼 보복 관세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 대립관계를 형성한다.


1930년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은 불황 타개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농업부문에 대한 관세인상을 의회에 요청하였다. 그런데 자기 지역의 공업을 보호하려는 의원들이 원안의 관세보다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의결하였다.

미국은 이법에 따라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하였지만 캐나다와 영국 등 23개국이 수입제한, 환율통제, 보복관세로 대응하면서 무역전쟁이 발생하였다. 그 결과 세계 무역 규모는 1929년부터 34년까지 66% 감소하였으며, 전 세계 국내총생산은 1929년부터 1932년까지 15% 감소하였다.

1929년부터 공황이 최고점에 이르렀던 1933년까지 미국의 수입과 수출은 각각 66%, 61% 줄었다. 1930년 8%였던 미국의 실업률은 1932년과 1933년 사이 25%까지 치솟았다.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절망에 빠진 독일과 이탈리아의 국민들은 민족주의를 호소하는 나치즘과 파시즘에 기울어져 2차 대전으로 치달았다.

미국과 캐나다, 관세전쟁의 폐해를 겪은 후 관세장벽을 낮추고 경제공동체 추구

미국과 캐나다는 1854년 '엘진마시협정(Elgin-Marcy Treaty)'으로 알려진 '캐나다·미국 상호이해협정(Canada-America Reciprocity Treaty)'을 체결하여 자유 무역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남북전쟁 이후 장기 집권한 공화당 정부는 북부의 산업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였기 때문에 보호무역정책을 추진하였다. 공화당 정부는 1866년 이 조약을 폐기하고 캐나다 상품에 대한 관세를 높였고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자는 캐나다의 제안도 거부하였다.

1878년 경제 침체 기간 중 집권한 존 맥도널드 캐나다 초대 총리도 미국에 대한 관세를 높였다. 이에 미국 공화당 정부는 1890년 '맥킨리 관세법'을 제정해 모든 수입 제품의 평균 관세율을 38%에서 49.5%로 높였다.

나아가 미국 정부는 1897년 '딩글리 관세법'을 제정하여 관세 세율을 더 높였다. 캐나다도 보복 관세를 높이자, 1889~92년 미국산 농산물의 캐나다 수출이 절반으로 감소하였다.

캐나다는 미국 대신에 영연방에 수출을 늘리는 한편 러시아를 새로운 무역 대상국으로 개척하였다. 미국의 기업들은 캐나다의 관세를 피하고자 캐나다에 수출하는 상품을 만드는 공장을 캐나다로 이전하였다. 싱어매뉴팩처링, 웨스팅하우스 등 1880년대 후반까지 캐나다로 공장을 옮긴 미국 기업이 65곳에 이르렀다.

보복관세 제한하는 GATT 이후에도 관세전쟁이 끊이지 않아

자유무역은 가격을 낮추고 무역을 확대한다. 반면 보호무역에 따른 관세는 처음에는 수입품의 가격이 올라 수입이 줄지만 상대방이 보복관세를 하면 수출품의 가격도 올라 수출도 줄기 때문에 전체 무역량이 감소하고 가격만 올라 국민들에게 피해가 간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교훈삼아 제국주의 국가들은 보복관세로 인한 무역전쟁의 재발을 막고자 1948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무역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1960년대 미국과 유럽은 '치킨무역전쟁'을 겪었다. 미국산 닭고기가 유럽에 대거 수출되자 유럽이 큰 피해를 보았다. 이에 1962년 유럽경제공동체(ECC)는 서독에 수입되는 닭고기에 대한 관세를 올렸다.

이에 미국은 1963년 유럽산 브랜디, 경량트럭, 폭스바겐 버스 등에 25% 관세를 부과하였다. 무역전쟁은 안보분야로 확산되었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하였다. 하지만 ECC가 무역전쟁을 미국의 자동차에 확대하자 미국이 큰 피해를 봤다.

과거 식민지 국가와 경제공동체를 형성해 새로운 관세장벽을 쌓기도

1975년 유럽의 9개국은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과 로메협정을 체결하여 이들 국가에 특혜관세를 부여해왔다. 1993년 EC는 유럽 연합의 출범을 앞두고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바나나 수입정책을 EC 공동정책으로 개편하였다.

이 정책에 따라 유럽연합은 남미 산 바나나에 대해 수입을 제한하는 한편, 유럽연합 회원국의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의 바나나 수입에 대해서는 로메협정에 따라 특혜를 인정하였다.

이에 에콰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멕시코 및 미국이 EC를 상대로 WTO에 제소하였다. 남미 바나나 생산자들의 정치자금 기부와 로비로 인해 1994년 미국정부는 유럽연합에 대해 슈퍼 301조에 따라 불공정무역 여부에 관한 심사를 결정하였다.

1998년 미국 무역대표부가 "유럽연합이 바나나에 대한 기존의 방침을 수정하지 않는 한 유럽연합에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하였다. 결국 유럽연합은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에게 부여했던 특혜를 보상금을 주고 폐지하였다.

공산품 경쟁력 떨어진 미국, 자국 산업 보호 위해 반덤핑 관세 부과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공산품이 수입상품에 대한 경쟁력을 잃으면서 공산품에 대한 보호무역이 부활하였다. 1974년 미국은 통상법을 개정하여 외국의 불공정 무역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였다. 1984년 레이건 정부는 한국산 브라운관 컬러TV를 대상으로 15%의 반덤핑 관세를 부여하였다.

한편 "슈퍼 301조"는 1988년 종합대외무역경쟁법(Omnibus Foreign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에 의해 한시적으로 도입되었는데 그 이후에도 수차례 한시적으로 운영하였다.

이법에 따라 상대 국가가 3년 이내에 불공정 무역행위를 시정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행정명령으로 광범위한 보복조치를 할 수 있다. 1988년 일본산 자동차에 대해, 1997년 한국산 자동차에 대하여 슈퍼 301조가 발동되었다.

미국, 고부가가치 산업 독점을 위한 협상용으로 공산품에 보복관세

2010년 이후 세계의 잉여가치는 거의 증가되지 않는데, 중국, 인도와 같은 신흥국들이 미국과 잉여가치 획득을 위한 경쟁을 하였다. 미국은 서비스업과 지적 재산권 분야에서 다른 나라를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분야는 상품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망과 관련 법제도를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역협정이 중요해졌다. 미국은 이런 무역협정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나라의 서비스 산업과 지적 재산권과 관련된 정책 수립에 개입하였다.

따라서 서비스업 개방을 위한 무역협정이 중요해졌다. 미국은 철강 등 전통적인 산업 분야에서의 무역적자를 이유로 관세전쟁을 하였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우위에 있는 첨단 기술과 지적재산권을 보호받기를 원하였다.

미국, 금융산업의 불안으로 공장산업을 탈환하고자 관세전쟁 시작

그런데 서비스업과 금융업에 치중하게 된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전통적인 제조업을 회생하고자 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해외에 있는 미국 기업의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복귀(리쇼어링)하도록 장려하였다.

트럼프대통령 역시 자동차와 철강 등 전통적인 산업을 회생하기 위해 보호무역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연장선에서 트럼프대통령은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재협상을 추진하였고 TTP를 2017년 탈퇴하였다.

트럼프대통령은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고율의 관세를 주로 중국 제품에 부과하였으며, 중국 역시 보복관세로 대응하였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보복관세를 주고 받았지만 교역량이 감소하고 수입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관세전쟁을 중단하는 협상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공장산업 보호는 명분에 불과, 고부가가치 산업 독점 대가로 관세전쟁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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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트럼프 대통령 시절 2019년 12월 미국과 중국은 보복관세를 줄이는 무역협정에 1차로 합의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장산업의 탈환이라는 트럼프의 치적을 의식하여 중국과의 무역협정을 잠정 중단하면서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2021년 8월 5일 미국 내 31개 경제단체들은 바이든 행정부에게 중국과의 무역협정을 재개해 비생산적인 관세를 철폐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중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있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중국에게 산업보조금 삭감과 국유기업 특혜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과 중국은 관세전쟁이 자국의 산업과 소비자에게 불리하고, 미중관계를 전반적으로 악화시킨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특히 바이든은 트럼프 효과 때문에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결국 적절한 시기에 명분을 찾아 타협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이 이미 공산품에 대한 경쟁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중국 공산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미국은 공장산업을 탈환할 수 없다. 결국 공산품은 중국, 고부가가치 산업은 미국이라는 분업 즉 협력관계를 복원시킬 수밖에 없다.

미국은 각종 서비스 산업, 금융산업, 지식산업에 대한 자신의 독점을 제도화하고 중국이 이 분야의 문호를 개방할 것을 요구하고 대신 공산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철폐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중 관세전쟁은 미국이 공장산업의 보호라는 명분으로 시작했지만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독점을 보장받는 실리를 얻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즉 오늘날 관세전쟁은 과거와 달리 협상을 목표로 하는 전술에 불과하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뒤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등을 저술하였습니다.
#경제전쟁 #무역전쟁 #관세전쟁 #환율전쟁 #블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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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12년간 기관지위원회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연방제 통일과 새로운 공화국』,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 마르크스의 실천과 이론』 등의 저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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