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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암벽에 새긴 '한자'와 마을 담장에 그린 '한글'

전북 순창군, 자연훼손과 사람친화 그 사이

등록 2021.08.30 13:29수정 2021.08.3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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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용궐산에 새겨져 있다. 전북 순창군청이 최근 발주해서 자연 암벽에 새겼다. ⓒ 최육상

   

순창군 복흥면 덕흥마을 담장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소나무가 그림인지, 고개를 늘어뜨린 능소화가 그림인지. 덕흥마을은 벽화마을이다. ⓒ 최육상

  
자연 암벽에 새긴 '한자'와 마을 담장에 그린 '한글'이 있다. '한자'는 '용궐산' 자연 암벽 곳곳에 새겨져 있고, '한글'은 '덕흥마을' 집집 담장마다 그려져 있다. 최근,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마주한 장면이다.

자연훼손 '한자'

순창군 동계면에 위치한 용궐산에는 '溪山無盡', '龍飛鳳舞', '智者樂水 仁者樂山', '第一江山' 등의 한자를 새겼다. 용궐산 한자 옆에는 이 문구를 왜 여기에 새겼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다.

용궐산 암벽의 '한자'는 '용궐산 하늘길'을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며 최근 순창군청이 발주해 새겨 넣었다.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은 용궐산 한자 문제를 지난 19일 자 신문에서 다루며 군민들의 '환경훼손' 비판 목소리를 전했다. 같은 날 <오마이뉴스>를 통해 '포털사이트 다음'에 노출된 '순창 용궐산 하늘길 절경은 절경인데... 안전은?'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정신 나갔구나. 설악산 곳곳 무릉도원 등등 국내의 명산대천 암반 내지 반석마다 박힌 한자들 그건 낙서일 뿐이다."
 

용궐산 자연 암벽을 깎아낸 뒤 '한자'를 새기고 있는 모습.(지난 7월 9일 공사 현장 촬영) ⓒ 최육상


사람친화 '한글'

지난 22일 오후 순창군 복흥면에 자리한 덕흥마을을 찾아갔다. 마을로 들어서자 알록달록 색동옷을 입은 것처럼 담장에 그려진 벽화가 눈에 띄었다. 멋진 그림과 함께 더욱 눈여겨보게 된 건 한글로 된 문구였다.

"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
"꿈꾸는 걸 포기하지 마."
"그래, 넌 웃는 게 예뻐."



덕흥마을 입구에는 "행복이 넘치는 봉덕리 덕흥 벽화마을입니다"라는 선전판이 세워져 있다. 선전판을 확인하고 다시 벽화를 바라봤다. 사람친화적인 그림과 한글은 보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 그렸다.

"당신과 함께라면 따뜻합니다."
 

'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너 뿐이야." 벽화마을인 덕흥마을 집집 담장에는 그림과 함께 한글이 그려져 있다. ⓒ 최육상

 
개발되지 않은 자연환경 좋았는데

서울의 삶을 접고 전북 순창군에서 생활한 지 7개월 지났다. 새내기 군민의 눈에 비친 순창은 공기 좋고, 물 맑고, 정감 넘치는 시골 농촌이다. 아직 뭘 모르는 새내기라 그런지, 순창군 곳곳은 갈 때마다 탄성이 나온다. 자연환경은 개발되지 않은 채여서 넉넉하고 푸근한 느낌을 준다.

지난 21일 오전 지인 여럿과 비가 세차게 내리치는 와중에 순창군 동계면 장군목 일대 바위를 답사했다. 섬진강물에 빠져 바위를 이리저리 살피는데 멀리 자태를 드러낸 용궐산이 계속 눈에 밟혔다.

현재 순창군민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자연 암벽에 한자를 새기는 게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정말로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먼 훗날 후손들은 용궐산 암벽의 한자와 덕흥마을 담장의 한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한 군민은 이렇게 호소했다.

"순창군민으로서 자연을 파괴한 행위에 참담한 심정입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소중한 자연유산을 보존하면서 개발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사는 것도 아니고. 먼 훗날 후손들이 암벽에 한자를 새긴 우리들을 욕할 겁니다."
#전북 순창 #용궐산 #용궐산 하늘길 #벽화마을 #덕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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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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