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 역사관 외벽의 벽화그림들매향리 역사관 자리는 수많은 주민들이 투쟁의 본부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공군기지가 욺겨가면서 비극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그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운민
미군 비행기의 폭격이 시작될 때마다 그 굉음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의 집이 금이 가고, 유리창이 깨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인 사격이나 불발탄으로 인해 주민 13명이 숨지고 22명이 중상을 입는 등 매향리 주민들은 전시(戰時)를 살아온 것이다.
주민들은 갖은 항의 수단을 동원해 보았지만 미군 측이나 한국 정부는 묵묵부답의 상태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2000년 kbs <추적 60분>이란 프로그램에서 이 사태를 집중적으로 다룬 이후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결국 2005년에 매향리, 쿠니 사격장은 폐쇄되면서 그 막을 내렸다.
비록 고통은 끝났을지 몰라도 너무 먼길을 돌아온 것 같다. 나도 몇 년 전까지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 적이 있었다. 1시간에 한 대 꼴로 비행기가 드문 드문 지나갔지만 그 소음은 마치 온 천지를 울리는 듯해서 발끝에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아픈 기억들은 주민뿐만 아니라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고 본다.
이제 평화의 상징이 된 매향리 포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가건물로 지어진 매향리 역사관이 조촐하게 있었다. 이곳은 매향리 주민들이 모여 실제로 투쟁을 벌였던 본부였다고 한다. 2005년 훈련장 폐쇄와 함께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매향리 평화역사관'을 열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선 역사관의 마당으로 가면 난데없이 녹슨 무언가가 적어도 수천 개 이상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다름 아닌 포탄이다. 군 복무 시절에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고, 전쟁기념관에서 조차 드문드문 보이던 포탄이 돌무더기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미디어에서만 들어서 실감이 나지 않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는 오싹한 순간이다.
아쉽게도 기념관 문은 현재 닫혀 있었지만, 그 주변에는 포탄이나 탄피 등 매향리에서 발견된 것들을 이용해 만든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 가건물 같은 임시 전시장을 벗어나 제대로 만들어진 역사관과 평화공원이 조성되길 바라지만 아직 갈길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