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추석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동월대비 2.6% 올라 지난 4월 이후 5개월째 2%대 상승세를 지속했다. 사진은 3일 청량리 청과물시장 모습.
연합뉴스
"햇살이 이렇게 뜨거워야 벼도 익고 과일도 익지."
9월인데도 날씨가 너무 뜨겁다며 불평을 할 때면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다. 그런데 올해는 내 생애 처음으로 가을 장마를 본다. 가을비가 아닌 가을 장마는 쨍한 햇빛 대신 서늘한 비와 구름을 선사했고, 나는 난생처음으로 채솟값 걱정을 해보았다.
아마도 올해 초 파값 파동을 겪은 기억 때문일 것이다. '파테크'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온 국민의 시선을 파값으로 쏠리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번에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모든 물가가 일제히 상승하는 모양새다.
게다가 이번엔 '추석 물가'에 가을 장마까지 겹쳤으니 물가가 치솟을 거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또 일부에선 최근 지급하기 시작한 재난지원금이 물가 상승률을 부추길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집에서 늘 밥을 해먹고는 있지만 장바구니 물가에 일희일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요즘 장을 보러 가면, 몇 가지만 담아도 5만 원이 훌쩍 넘으니 영 기분이 별로다. '집값도 오르고 기름값도 오르고 물가도 오르는데 월급만 그대로'라는 철 지난 한탄이 하고 싶은 것은 아닌데, 다른 건 몰라도 식재료 값이 자꾸 오르는 것을 보면 나는 조금 불안해진다.
먹거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물가가 오르면 밥상을 조금 단출하게 차리면 되는 문제이고, 더군다나 추석이 다가온다고 한들 나는 차례를 지내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추석 물가에 그리 민감한 편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식재료의 가격에 이렇게 유난히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바로 먹거리의 가격이 아닌 먹거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 즉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우려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 상승은 그 원인으로 보면 기름값이 오른다거나 집값이 오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선상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기름값이나 집값 등은 여러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농산물 가격은 그 해의 작황에 따른 것이라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까닭이다.
이번 농산물 가격의 주요 상승 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올여름의 폭염과 때늦은 가을장마라고 한다. 기후변화는 꾸준히 예고되어왔고, 그 경고음을 도처에서 울려댔지만, 사실 눈앞에 실제적으로 보이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육식 문화가 탄소 배출 요인이 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오늘 하루 고기 먹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플라스틱이 지구 환경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오늘도 예쁜 쓰레기를 사고 1회용 용기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고기를 사는 순간, 천둥이나 번개가 친다면 모를까, 아마도 수치로만 확인할 수 있는 환경오염이나 기후변화 때문에 오늘의 고기를 포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밥상물가라는 것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비가 와야 할 때 오지 않았고, 비가 오지 말아야 할 때 비가 많이 와서 평소보다 작황이 부실했다는 결과가 단지 올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어쩌면 매년 되풀이될 수 있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를 보며 식량문제를 떠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