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한글문화연대 국어문화원 부원장이 도로 관련 전문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김병기
김명진 부원장은 "이번에 글 다듬는 작업을 하면서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특히 일본말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관행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사용하지 말자는 데에는 충분히 공감하는 것 같아 희망적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에는 영어식 표현이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한탄하듯이 기자에게 질문을 했다.
"기자님, 'PA'가 뭔지 아세요? 파킹 에어리어(parking area, 주차구역)랍니다. 'SA'도 있어요. 서비스 에어리어(Service area, 서비스 구역)입니다. 고속도로 주차구역이나 휴게소, 쉼터 등에 이런 영어식 표지판이 들어오고 있죠. '그루빙'은 미끄럼 방지 기법, 럼블스트립은 졸음 운전 방지를 위한 경로이탈을 방지하는 홈입니다. 그 뜻을 모르면 안전에도 문제가 생기겠지요."
도로공사가 심의 요청한 영어식 표현은 '씽크홀'(땅 꺼짐), '블로업'(도로 솟음), '램프'(연결로), '사인보드'(안전 유도판), '쁘레카'(착암기), '다이크'(배수턱), '에코 코리더'(생태 통로) 등 25개이다.
개념이 분명치 않아서 현장에서 혼선이 생기는 용어도 있다. '노견'이라는 한자어 표현이 대표적이다. 김 부원장은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갓길'이라는 표현으로 바꾸면 될 것 같았는데, 전문가들은 자칫 '길'로 오해될 수 있고 '길어깨'가 좀더 폭넓은 개념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면서 "차량 통행이 가능한 고속도로의 경우에는 '갓길', 지방도로처럼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곳은 '길어깨'로 분리하여 바꾸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김 부원장에게 이번 사업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물었다. 그는 도로공사 측에 고마움부터 전했다.
"도로공사 내부 직원들의 자발적 의지로 시작된 사업입니다. 한글문화연대에 찾아와 도로 분야 전문 용어를 다듬고 싶다면서 자문부터 구해왔죠. 사실 저희는 각종 기관의 용어 문제를 지적해 왔는데요, 제3자가 간섭하듯이 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당사자들의 자각은 이 일을 완성하는 데 큰 힘이 되겠지요."
김 부원장은 아쉬움도 표했다. 계약할 때 가격을 협상하는 뜻을 담은 '시담'이라는 용어를 예로 들었다. 그는 "시담을 '협의'라는 말로 바꾸고 싶었고 도로공사 측도 동의했는데, 심의 과정에서 도로 분야의 용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됐다"라면서 "이런 기준이라면 3~4개 분야에 걸쳐 있는 전문 용어는 누구도 손댈 수 없을 것"이라며 말했다.
"용어 학회가 있었으면… 각 분야 지식 대중화 나서야"
이날 출연자로 참석해 홍보 영상 제작 작업을 마친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도 거들었다.
"사실 용어를 다듬으면서 토박이말을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낯설고 촌스럽다면서 눈치를 본 전문가도 있었죠.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이 없어서겠지요. 새로 들어오는 외국어도 처음엔 낯이 설지요. 열 번 반복해서 들으면 익숙해집니다. 토박이말도 낯설지만 금방 익숙해집니다."
이 대표는 "도자기 학회와 함께 학술 용어를 다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각 분야의 학자들이 함께하는 '용어 학회'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라면서 "용어를 학술적 대상으로 보고, 그 탄생 배경과 쓰임새, 미래의 변화 가능성 등을 분석하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말을 쉬운 우리말로 다듬으면서 각 분야 지식의 대중화에 나서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국어기본법 제17조는 '전문용어의 표준화'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이 각 분야 전문용어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고 체계화하여 보급해야 한다."
"전문용어의 표준화 및 체계화를 위하여 중앙행정기관에 전문용어 표준화협의회를 두어야 한다."
도로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전문 영역이 존재한다. 특히 정보통신, 금융, 의학 등 신기술이 많이 들어오는 분야에는 영어 등의 외국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법률 용어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낯선 한자어가 많다. 이번에 도로공사가 적극 나선 용어 표준화 사업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또 다른 출연자로 참석했던 한국도로공사 구재욱 건설계획팀 차장은 "지난해 우리 분야에서 다듬어야 할 말로 선별했던 용어는 총 240건이었고, 최소한 100건 정도의 용어를 표준화 고시에 적용하고 싶었다"라면서 "이제 시작이고, 2년에 한 번씩 개정을 건의할 계획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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