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칼립투스은빛 가루가 내려앉은 독특한 색감이다. 키우는 동안 나를 달달 볶았지만 이렇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코를 갖다 대면 숲내음이 가득 퍼진다.
김이진
속이 터졌다. 베란다에서 바람이 가장 잘 드나드는 명당자리를 마련해줬고, 유심히 흙 상태를 들여다보고 유칼립투스를 관찰했다. 내 딴에는 따뜻하고 건조한 환경을 만들어줬다. 그러나 웬걸, 집에 들어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잎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잎 끝이 마르는 것처럼 시들시들해졌다. 몇몇 잎은 검게 색이 변하기도 했다.
본래 작은 잎이 많이 달린 식물은 물관리가 어렵다. 잎이 넓적하고 큼직한 식물은 물을 잘 보관해두고 여차하면 자기가 축적한 수분으로 꿋꿋하게 견디곤 한다. 잎이 작으면 여유가 없어서 바로바로 신호를 보내고 급작스럽게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유칼립투스도 그랬다. 그런데, 신호가 더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었다.
잎 위쪽에서 마르다가 또 어떨 때는 아래쪽 부분에서 잎이 떨어질 때가 있다. 잎 가장자리부터 마르기도 하고 잎 전체가 통째로 마르기도 한다. 가장 당혹스러운 건 잎은 후두두 떨어지는데 쑥쑥 자란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식물이 잎이 마르거나 떨어지는 것은 성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우선 잘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유칼립투스는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도 성장하려는 욕구가 엄청났다. 대단한 에너지다. 한쪽에서는 잎이 떨어지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새 잎이 집요하게 자라난다. 이렇게 저렇게 환경을 맞춰 줄 새도 없이 빨리 자라서 사람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든다.
만만치 않은 상대... 2차전은 좀 나으려나
물이 문제인 건 확실해 보였다. 새순에서 잎마름이 시작될 때 물을 보충해주면 다시 살아나곤 했다. 유칼립투스가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아래쪽 잎을 스스로 떨궈내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새순한테만 햇빛 영양을 몰아주려는 걸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유칼립투스는 물이 부족해서 잎이 마르기도 하고, 물이 과해서 잎이 마르기도 한다. 물이 과한 경우라면 겉으로는 잎이 말라가지만 사실은 뿌리가 썩어서 죽게 된다. 말장난 같은 생장 환경을 요구하는 유칼립투스는 난이도 최상의 식물이었다.
고군분투의 시간들. 나름 단순한 규칙을 정했다. 위쪽 잎이 마를 때는 물을 충분히 주고, 아래쪽이 마를 때는 건조하게 두었다. 마른 잎은 바로 떼어내고, 효과적인 물 순환을 위해 목질화 된 단단한 줄기를 중심으로 가지를 조금씩 정리하기도 했다.
뜨거운 바람이 조금이라도 닿으면 물마름이 심해질 것 같아 에어컨 실외기에서 최대한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잡지에서 보던 아름다운 식물은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