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4 - ‘BUSHIDO’에서 언급한 사무라이의 7가지 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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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주로 '무사의 목숨을 건 충의(忠義)의 실행' 정도를 뜻하던 일본의 '의용'이 근대 시민사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출현하며 '보통 사람의 충의와 인의(仁義, 이웃에 대한 어진 도리)의 실천'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일본의 근대화 시기에 서양의 의병인 'volunteer army(자원군, 시민군)' 개념을 일본 국내에 소개할 때 기존 무사도의 '의용'을 가져다 쓴('의용군'으로 번역) 결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1863년 일본 조슈번(현재의 야마구치현)에서 당시 20대였던 이토 히로부미 등의 존왕양이(尊王攘夷)파가 정한론을 처음 주장한 스승 요시다 쇼인의 '서양보병론(西洋歩兵論)'을 참고하여 조직한 '의용대(義勇隊)'라는 이름의 민병대가 막부 타도에 큰 역할을 한 바도 있다. 이로부터 일본에서는 '의용'의 개념적 행동 범위가 기존의 무력(武力) 중심에서 비군사적 부문의 일반인의 무보수 자원봉사활동(volunteer work)까지 확대되는데 '의용 소방'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근대적 '의용'의 다른 사례로는 만주 지역 개척을 위해 일본과 조선 청년을 이주시켰던 만주개척청년의용대(1938), 대만 원주민으로 태평양전쟁에 동원되었던 다카사고의용대高砂義勇隊(1942),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의 본토 결전에 대비한 국민의용대(1945) 등이 있었으나 전제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대 상황 탓으로 여전히 '충의'적인 성격이 강해 겉으로는 '자원(自願)'을 내세워도 속으로는 강제 동원의 성격을 띠었다. 1960년대까지도 일본에서는 자발적 공익봉사활동을 '의용'으로 표현해 오다가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ボランティア(보란티아, volunteer)'라는 외래어로 대체해 쓰기 시작한다.
'충의'를 바탕으로 '인의'로 확장된 근대적 '의용'은 식민지 조선과 대만, 중국에도 전파되어 널리 쓰이는데 한 예로 1920년 6월 17일 자 조선일보를 보면 '미국에서 40만에 달하는 석탄 갱부가 하루 여섯 시간, 일주일 30시간제 노동을 위해 총파업을 벌이자 캔자스 주지사가 국민의 자발적 애국심에 호소하여 수만(數萬)의 의용탄갱부(義勇炭坑夫)를 모집하였다'라는 기사가 나온다.
우리를 위해 나를 버리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 중 하나인지라 우리 역사에도 자발적 공익추구 성격의 '의용' 기록이 있다. 고구려와 백제 유민의 부흥 운동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의병 활동이 한 예인데 임진왜란 때인 1592년에는 왜군이 현재 부산의 수영성에 주둔하며 온갖 만행을 저지르자 수영성 수군과 백성 25명이 결의를 맺고 7년간 뭍과 바다에서 항일 유격 투쟁을 벌이다가 모두 순절하였다. 1608년 동래부사로 부임한 이안눌이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이들의 집 대문에 '의용'이라는 글을 붙여 그 정신을 기리고 자손들에게 포상하였는데(숙종실록) 이는 우리나라에서 백성의 자발적인 구난(救難, 救亂) 행위를 '의용'으로 부른 최초의 사례로 보인다. (철종 이후에는 이를 기려 비석(의용단)과 사당(의용사)을 세웠으며 부산시에서는 '의용25인'이라고 하여 지금도 해마다 이들의 제사를 지낸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 잠깐 주춤했던 의병 정신은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 촛불 신세이던 조선 말기에 다시 불붙는데 1907년 대한제국군의 해산으로 일어난 정미의병이 1919년 고종황제 승하 전까지 명맥을 이어갔으나 3.1 운동 이후 설립된 상해 임시정부가 공화정을 표방하면서 근왕(勤王)과 충의(忠義)의 성격이 강했던 '의병'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 뒤로 나라를 잃은 조선사람들은 자신들의 항일무장투쟁을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근대적 '의용' 개념으로 표현했는데 1920년 평안북도에서 결성된 벽창의용대를 시작으로 대한의용군사회(1921), 병인의용대(1926), 조선의용대(1938), 조선의용군(1942)이 있었고 분단 이후에는 남과 북을 통틀어 혁명의용군(1948), 인민의용군(1950), 대한학도의용대(1950), 의용경찰대(1951), 독도의용수비대(1953) 등이 있었다. 비군사 부문에서는 의용소방대(순종실록, 1925)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쓰임새가 남아 있는 것은 '의용소방대' 정도인데 한국전쟁 이후 더 이상의 용례 추가가 없는 것을 보면 이 '의용'이라는 말은 한글 전용으로의 빠른 전환과 전쟁없는 평화 시대의 지속, 주권재민의 확대로 현대적 생명력 확보에 상당 부분 실패한 근대적 어휘로 구분할 수 있겠다. (※ 2022년 5월 현재 대한민국과 일본 언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돕기 위한 외국인 '자원군(自願軍, international legion)'을 '국제 의용군'으로 부르고 있다.)
(다음 편 "'의용봉공', 일본 제국주의 망령이 짙게 밴 말"에서 계속됩니다. http://omn.kr/1ys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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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부르짖는 '의용봉공', 그 뜻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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