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계는 점차 고양이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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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 나는 동물에 무지한 사람이었다. 가끔 마주치는 이웃의 강아지나 한 번씩 예뻐할 줄 알았지 그 외에는 관심도 없고, 딱히 알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몇 초쯤 인사를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던 내가 강아지도 아닌 고양이 반려인이 될 줄이야.
남편의 고양이 반냐, 그리고 내가 입양한 고양이 애월까지 고양이 두 마리와 산 지도 벌써 9년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고양이 등허리를 어루만지며 네 번의 이사와 이직과 해고와 또 다른 업을 찾는 일들을 통과했다.
이제 나는 내 삶과 고양이를 분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버터가 스르륵 녹아 스며든 팬케이크처럼, 고양이가 내 삶에 완벽히 녹아들어 분리할 수가 없다. 고양이를 떼어내면 내 삶의 일부도 떨어져 나갈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며 알았다. 누군가를 내 삶에 들이는 건 상대방 하나만 오는 게 아니라는 걸.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고양이의 세계도 함께 온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나는 두 번 버려졌던 첫째 고양이를 키우면서 과거 '반려동물은 펫숍에서 사는 것'이라고 여기던 생각에서 벗어나 반려동물 입양이라는 세계에 눈을 떴다.
내 세상은 점차 고양이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과거에는 별것 아니던 일들이 고양이라는 세계를 만나고 나니 별것이 됐다. 이제 나는 유튜브의 사랑스러운 먼치킨 고양이나 스코티쉬폴드 영상을 보지 않는다. 먼치킨의 경우 짧은 다리를 위해, 스코티쉬폴드는 접힌 귀를 위해 인위적으로 개량되어 유전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코티쉬폴드의 경우 폴드와 폴드끼리 교배를 하면 99%가 유전 질환에 걸리게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순종 고양이들과 유전병" 뉴스1, 2017.9.19.). 이 사실을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나니 귀여움으로 무장한 먼치킨과 스코티쉬폴드의 영상을 소비하기 어려워졌다.
또 산책을 하다 펫숍을 지나가게 되면 옛날처럼 유리창에 달라붙어 조그마한 강아지들을 구경하지 못한다. 대신 나는 상품처럼 강아지와 고양이 열댓 마리를 진열해놓은 펫숍을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다. 낮이고 밤이고 지나치게 조도가 높은, 창백한 하얀빛 아래서 산책도 하지 못하는 강아지를 보는 일이 마음 편치 않아서다. 그렇게 나는 불편한 게 많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고양이에서 더 확장된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