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식용 금지는 가능한가

개 식용 금지 찬반 논란에 부쳐

등록 2021.09.28 14:14수정 2021.09.2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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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식용 금지'에 관해서는, 찬성과 반대 이전에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의 문제를 먼저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돼지나 소, 닭 등 다양한 동물들을 식용하면서 '개'만 식용 금지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의외로 대답은 간단하다. 가능하다.

이미 우리는 특정한 동물들의 식용을 금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멸종위기 보호종이며, 그 밖의 각종 야생동물 등의 식용을 이미 '야생생물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가령, 야생 고라니, 너구리, 멧돼지, 노루 등은 먹으면 안 된다.

그 다음의 문제는 '개는 특별한가'이다. 여기에서 특별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문제가 될텐데, 식용하지 말아야 할 만큼 특별한가에 관해 따져보면 된다. 개는 멸종위기 보호종이 아니고, 생태계 균형 유지에서 중요한 동물도 아니다. 즉, 개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식용하지 말아야 할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올려볼 수 있는 건 개가 다른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 사회에 고도로 적응하여 인간과 협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명구조견, 맹인안내견, 마약탐지견, 양치기견, 사냥개, 경비견, 군견, 심리치료견 등 어지간한 개는 특정 사회적 역할에서 인간의 쓸모에 비견될 정도로 인간과 함께 '사회'를 이루고 있는 동물이 되었다.

한때 농경을 돕던 소나 이동수단이었던 말이 이에 비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현재로서는 이에 비견할 수 있는 동물은 없다. 그 외의 동물은 스스로 협력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금당한 채 사육되어 잡아 먹히거나 실험용으로 쓰이는 방식으로 사회에서 이용되는 정도이다.

다른 특성으로는, 적지 않은 사람에게 개가 '가족 구성원'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는 1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대다수가 개나 고양이를 기른다. 이들은 수적으로 보더라도, 상당수 사람들에게 '가족 구성원'이다.

만약 종교가 이 정도 인구를 지닌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최대 규모의 종교가 될 정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나 고양이는 특별한 점이 있다.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1500만 명이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개 식용할 권리는 제한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이런 이유들이 '개 식용 금지'를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개 식용을 원하는 사람, 개 식용을 업으로 하는 사람의 권리를 제한하고 억압할 정도의 이유가 되느냐는 점이다.

만약 그렇게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금지시키지 못할 것은 없다. 사회가 합의하여 금지시키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개 식용할 권리' 때문이다. 결국 개가 특별한 이유가 개 식용할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개 식용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라는 건 정확히 이 지점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개 식용 찬성론자는 '개 식용할 이유'를 우선하고, 개 식용 반대론자는 '개 식용 금지할 이유'를 우선하여서, 둘 중 무엇이 더 타당한지 따지면 된다. 개 식용할 이유라는 것은, 더 이상 생존과 영양 때문은 아니고 대개 취향과 관습 때문이다. 즉, 취향의 자유가 핵심이다. 이 입장에서는, 말벌주 먹을 자유, 송이버섯 먹을 자유, 간장게장 먹을 자유와 개 먹을 자유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론자 입장은 개인의 취향의 자유보다, 총체적인 '사회'를 우선시한다. 사회적 다수의 합의, 개가 가족이 된 시대, 개가 사회에 협력하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방식, 세계화 시대의 국제적 인식 등이 하나의 취향이나 관습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핵심은 인간이 인간에게 공감하는 것 만큼이나 개에 대한 공감 능력을 발달시킨 시대가 되었고, 개를 가족으로 여길 만큼 사회적인 정서가 급격히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고, 인간은 그 사회 구성원으로 꼭 '인간 종'이 아닌 '다른 종'을 얼마든지 '사회적 합의'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러기에 '개'는 충분히 적절하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사회적 인간'의 범주라는 것도 지금처럼 정착된 건 고작 몇 십년 되지 않았다. 서구 사회에서 흑인은 얼마 전까지 인간이 아니었고, 여성도 온전한 의미에서의 인간은 아니었다. 우리 나라에서만 하더라도, 불과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은 생체실험을 당하는 등 온전한 인간이라 하기 곤란했다.

사실, 지금도 사형제도가 선고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 인간은 죽여도 되는, 인간 바깥으로 쫓겨난 생물이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합의하는 '인간'의 범주, 혹은 '사회적 구성원'의 범주는 꽤나 유동적이다. 그 구성원이 다른 생물로 확대되어, 그에 대한 식용이나 살해 등을 금지하는 방식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개 식용 금지의 사회적 의미

개 식용 금지에는 어떤 사회적 실익이 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우리가 어떤 동물에 대해, 그와 감정적 유대가 있고, 우리에게 도움과 위로를 주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라 인정하고, 그를 우리 사회의 보호 범위에 불러들이는 것은 한 사회가 총체적 의미에서의 '타자'에 대해 보다 관대하겠다는 선언이다.

"인간 종이 아니면 다 먹어도 된다"가 아니라, "인간 종이 아니어도 우리와 가족이 될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다"는 명제는 그 자체로 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는 의미 있는 방향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야생동물 식용을 금지하는 '생태계 균형'이라는 이유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총체적인 '사회적 의미'가 특정인들의 '취향의 자유'보다 중요한가? 그것은 더 따져볼 문제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각종 '사회적 의미'를 통해 다양한 취향들을 제한하고 있다. 생태계 균형, 국민 건강, 건전한 사회풍습 등을 위해 제한하고 있는 취향들이 적지 않다. 만약, 우리 사회의 상당수가 이런 특정 동물과의 협력과 공존, 유대를 깊이 지지하고 있다면, 그 합의 앞에 하나의 취향은 제한 가능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 식용 금지는 가능하다. 그것은 적어도 아예 불가능하거나 터무니 없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품고 있고, 우리 사회의 방향과 미래가 될 수 있는 의미를 지닌 규범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규범이 그렇듯이, 우리는 그런 규범 또한 우리 사회의 '합의'로 결정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정지우 변호사, 문화평론가(facebook.com/writerjiwoo)
#사회 #문화 #개식용금지 #개식용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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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겸 변호사.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너는 나의 시절이다>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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