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가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한국 사회에 더욱 깊숙이 뿌리내리는 '일상의 혐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성호
혐오가 우리 일상에 깊숙히 파고들고 있단 걸 느끼게 해준 신호는 이미 여러 차례 감지됐다. 특히 지난 여름, 도쿄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선수를 향한 근거 없는 여성혐오는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이밖에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타자를 향한 혐오가 마치 놀이문화가 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8년 혐오 표현에 대한 내용이 담긴 <말이 칼이 될 때>를 내놓는 등 차별과 혐오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또한 최근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 혐오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특히 과거 온라인에 머물던 혐오가 오프라인으로 나온 것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9월 24일 숙명여대 진리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홍 교수는 일상적인 혐오가 늘어났다는 데 공감하면서 "이전에는 혐오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인식했지만, 최근에는 본인들이 하는 것이 혐오인지 아닌지 그 문제의식조차 희석되고, 문제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로 나아갔다고 본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반대 시위를 주목하며 "난민 반대 시위는 집단의 특성을 종잡을 수 없었다"라며 "한두 달 뒤에 국회에서 난민법 폐지 입법을 내놓는다. 혐오가 정치랑 연결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혐오가 일상화되면서 폭발할 여지를 보여주는 시사점이 큰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지금보다 더 일상적으로 혐오가 퍼진다면 우려되는 지점이 많다며 "독일에서 히틀러가 처음 등장했을 때 10년 안에 홀로코스트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라며 "우리 또한 당장 혐오 대책을 마련해놓지 못한다면 언제 위기가 극단화될지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홍성수 교수와의 일문일답.
"혐오자들은 자신이 혐오한다고 생각 않는다"
▲ 홍성수 교수 “혐오자들은 자기가 혐오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유성호
- 혐오가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 최근 인권위가 발표한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이후 혐오와 차별이 증가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혐오표현 연구자로서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혐오표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대에는 혐오가 일상화됐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상화 혹은 대중화됐다. 이전에는 혐오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인식했지만, 최근에는 본인들이 하는 것이 혐오인지 아닌지 그 문제의식조차 희석되고, 문제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로 나아갔다고 본다."
-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혐오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당화하는 기제들이 있어야 한다. 혐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홀로코스트를 보면, '유대인 혐오를 한다'기 보다는 '과학적 판단에 의해서 인종적으로 열등한 사람을 배제하는 건 당연하다'는 식으로 자기정당화 기제가 발달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서, 내가 살기 위해서 등 정당화하는 기제들이 발달하면서 혐오가 더욱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난민혐오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난민혐오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을 지킨다고 생각한다."
- 지난 8월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특별기여자'라는 이름으로 입국시키지 않았나. 혐오표현 연구자로서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일단 한국 정부 활동을 지원해온 현지인과 가족을 입국시킨 것 자체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게 진짜 좋은 일이 되려면 그 다음이 중요하다. 이번 일이 계기가 돼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나 인식이 해소된다면 정말 잘 된 일이고, 데려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더이상 난민을 수용하지 못하고 여기서 멈춘다면 이번 수용이 갖는 의미가 삭감된다.
난민 수용 문제는 기여 여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이번 일로 인해) 국민들 인식 속에는 '대한민국에 기여한 바가 없으면 수용 불가하다'라는 프레임이 형성되어 버렸다. 정부가 한국에 기여한 사람은 수용할 수 있고 기여하지 않은 사람은 혜택을 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왜곡된 인식이 생길 수 있는 소지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 점은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 최근 도쿄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를 향한 여성혐오가 크게 논란이 됐다.
"한마디로, 최소한의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혐오가 일상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혐오가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부질없는 일인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경로로 혐오에 동참했던 사람들조차 회의하게 만드는 사건이지 않았을까?"
-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조사'와 별개로, 관련 사안을 연구하는 학자로서도 코로나19 이후에 혐오와 차별이 좀 더 늘었다고 판단하나.
"대개 사회경제적 위기가 확산될 때 혐오와 차별이 증가한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은 혐오와 차별이 확산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줬고 이는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한두 달 만에 차별 관련 문서들이 UN에서도 쏟아져 나왔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나서 갑자기 이론을 개발하고 대책을 세운게 아니다. 감염병이나 재난 같은 시기에 혐오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수차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 최근 한 일간지가 코로나19 이후 인터넷 사용량이 늘면서 혐오가 증폭됐다고 분석한 기사를 내놓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인터넷이 무조건 나쁜 공간인 건 아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상당수는 혐오가 확산되기 유리한 플랫폼이다. 해외의 난민 폭동 사진을 다섯 장 올린 뒤 '난민 받아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라고 한 줄로 묻고 끝나는 게시물이 올라온다. '좋아요'를 누르게 만든다. 저 같은 사람에게 난민을 왜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적어도 10분은 주셔야 가능하다. 더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20~30분 정도는 대화가 오고가야 여러 가지 오해와 편견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예전엔 히틀러 같은 사람이 물리적인 공간인 광장에서 스피커를 틀어 놓고 연설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유도했다. 온라인 시대에는 히틀러처럼 대중연설에 능한 특별한 인물이 굳이 필요 없다. 누구나 다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려서 여러 사람이 가진 편견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할 수 있도록 만든다. 댓글을 달고 퍼다 나르면서 쉽고 빠르게 확산된다. 인터넷 사용량이 늘어나는 것과 혐오 확산에는 대체로 관계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