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대 정부통령 민주당 신익희와 장면 후보 벽보(1956. 5.).
국가기록원
5월 4일 밤 10시 발 호남선 제33열차에는 신익희를 비롯 장면 부통령후보, 이들을 수행하는 몇 명의 당 간부가 탑승하였다. 그는 곧 5호차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새벽, 열차가 강경(江景)을 지날 무렵이었다. 하단 침대에서 해공이 잠을 깼다. "창현아! 뒤지 어디 있느냐?" 그는 신 비서를 불렀다. 곧 잠옷 바람으로 경호순경 장연수ㆍ선대영의 부축을 받으며 열차 내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 사이에 해공의 바로 윗층에서 잠자고 있던 운석이 내려와 조재천 대변인과 함께 해공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해공 옆 자리에 걸터 앉았다.
해공이 침대에 앉아 잠옷을 벗고, 와이샤츠로 갈아입은 뒤 나비 넥타이를 매려했다. 운석이 화장실 물이 안 나오자 "선생님, 세수를 하셔야죠. 그런데 물이 잘 안 나옵니다." 넌지시 말했다.
"뭐 급한 일도 아닌데 세수는…… 이따 전주 가서 합시다."라고 대답하며, 해공은 하던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까지도 해공의 표정은 약간 피로한 빛만 감돌았을 뿐 별달리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해공이 나비 넥타이를 매려고 고개를 뒤고 제치는 찰나였다. 옷깃을 바로 잡으려는 듯 올린 손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힘없이 머리를 떨구고, 보스턴 백에 엎으러져 그의 목을 잡고 있었다. 상체를 앞으로 꺽은 채 그대로 쓰러졌다. 이렇게 저절로 숨졌다.
"아니, 선생님! 선생님!……"
운석이 놀라 소리쳐 불렀지만 한 번 넘어진 해공은 끝내 아무런 말도 없었다. (주석 2)
거목은 이렇게 쓰러졌다. 유언 한 마디 남길 틈이 없었다. 유언은 이틀 전 한강 백사장에서 30만 시민들에게 토한 사자후로 대신해도 될 것이었다. 그러나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꼭 열흘 남긴 채 주역이 사라짐으로써 한국현대사는 흑역사의 개막으로 드라마가 바뀌고 말았다.
개인의 운명이 역사의 운명으로 엮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신익희의 돌연한 서거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오래 지체된 것은 비극이고 불행이었다.
63세, 한 일도 많았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았던 그는 호남선 열차에서 눈을 감았다.
주석
1> 신정완, 앞의 책, 118쪽.
2> 유치송, 앞의 책, 760~7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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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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