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희 후보를 애도하는 인파(1956년5월)
한국사진기자회
5월 23일 오전 11시 서울운동장에서 해공 신익희선생 국민장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장례위원장 함태영 부통령의 식사에 이어 각계 인사들의 헌화, 김병로 대법원장 등의 추모사가 있었다. 곽상훈 민주당 임시대표최고위원은 조사 도중에 목이 메어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해공 선생은 60 평생을 조국 독립과 민족 자유를 전취하는 투쟁에 바치었으니, 파란많던 이 나라 국정과 함께 선생의 일생 또한 험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이번 정ㆍ부통령 선거에 있어서는 한국의 민주정치와 책임정치를 확립하여 주기를 열망하는 국민의 여망을 지니고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시어, 선생의 포부와 경륜을 듣고자 하는 국민의 염원에 보답하기 위하여 과로를 무릅쓰고 각 지방으로 유세 중에 홀연히 장서(長逝)하시었습니다.
선생의 비보가 한 번 세상에 전해지자 선생을 생전에 알던 이, 모르던 이를 막론하고 어떠한 궁항벽촌에서까지 남녀노소가 마치 혈육의 지친(至親)을 잃은 듯이 땅을 치고 통곡하였습니다.
아아. 말은 한(恨)이 있으나, 애통의 정(情)은 한이 없습니다. 선생의 필생의 염원이던 자유 한국의 전취를 위하여 남은 국민은 더욱 분투할 것을 선생 영전에 맹세하면서 삼가 선생의 명복을 빌며, 이 조사를 드리나이다. (주석 4)
유족과 당 간부, 일반인의 순서로 분향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시인 조지훈이 짓고 나운영이 작곡한 조가를 양정고등학생들의 주악에 맞춰 동덕여고 합창단이 불렀다.
(1)
초목도 울었어라
임 가시던 그 날이여
강산에 비바람치고
백성은 목놓아 통곡했네
온 겨레 우국단심
불붙는 마당에
임이 가다니
이 나라 새 기운에
앞장서신 그 이름
아 - 해공 선생.
(2)
하늘도 무심해라
임 가시는 이 날이여
땅을 치고 몸부림해도
천지는 아득히 말이 없네
온 겨레 환호 소리
터지는 마당에
임이 가다니
이역풍상에도
꿋꿋하던 그 모습
아 - 해공 선생.
(후렴)
회천(回天) 큰 사업을
못 다 이루고
눈감으셨다
맘 있는 사람들은
길이 두고 울리라
길이 두고 울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