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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실은 왜 학교 구석에 있나? 죽음의 직장 오명 벗어야"

학교비정규직노조 경남지부, 급식실 노동환경 개선 근무환경 실태조사 발표

등록 2021.10.08 14:48수정 2021.10.0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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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는 10월 8일 창원노동회관 강당에서 “죽음의 급식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근무환경 실태조사 결과발표,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 윤성효

 
"급식소에서 많은 재해가 일어나고 있다. 자주 일어나는 재해는 화상이다."
"우리는 더 이상 암으로 죽고 싶지도, 일하다가 다치고 병들어 산재 신청하고 싶지도 않다."
"다리에 난 쥐가 안 풀려서 한밤중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지부장 강선영, 아래 학비지부)는 8일 창원노동회관 강당에서 연 '죽음의 급식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근무환경 실태조사 결과발표, 개선방안 토론'에서 급식 노동자들이 호소했다.

응답자 76.5%는 "근무 환경이 좋지 않다"

급식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은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비지부가 영양사, 조리사, 조리실무사 2387명을 대상으로 지난 9월 28~30일 사이 실시한 근무환경실태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급식 노동자의 연령대는 50대 이상이 69%를 차지했고, 10~20년이 56.7%로 가장 많았으며, 응답자 76.5%는 "근무 환경이 좋지 않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폐암 발생과 관련이 있는 환경이라 할 수 있는 '유해가스 냄새'와 '환기시설(후드) 문제', '반지하 위치'에 높은 비율로 응답했다.

절반 이상 응답노동자는 손목(손가락), 허리, 어깨, 팔, 목, 다리(무릎)가 아프다고 했다. 병원 치료애 대해, '학기중'에는 절반 이상인 54%가 '월 1~2회'이고 28%는 '주 1~2회'였으며, '방학중'에는 43.7%가 '주 1~2회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병원치료 종류는 '근골격계'가 92%, 호흡기내과가 2.4%, 신경정신과가 1.5% 등이었으며, 병원 치료 이외에 경락(66%), 요가, 수영, 도수치료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노동자 가운데 9.9%는 병가, 11%는 산재, 30%는 병휴직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70~90% 노동자가 아파도 병가나 휴직, 산재 사용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사유에 대해 65% 이상이 "동료에 피해를 줄까 봐서"라고 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더 힘들어졌다는 답변도 나왔다. 노동자 67.8%가 "시차 배식으로 인한 배식시간 증가"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또 조리사, 조리실무사는 소독방역과 시차배식 인력부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가장 먼저 개선할 점'에 대해, 응답자 71.2%는 급식노동자 1인당 담당 급식 건수를 뜻하는 '배치기준'을 하향해 노동강도 완화'가 필요하다 했고, 절반 이상은 '작업 환경 개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급식노동자 1인당의 식수 인원을 보면 100명 미만은 19.4%, 100~150명은 54.5%, 150~200명은 14.0%, 200~250명은 1.8%, 250명 이상은 10.2%를 차지했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민수 학비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천장도 낮고 환기도 잘 되지 않는 학교도 많을 뿐만 아니라 공기 질 기준도 없는 심각한 수준이다"며 "어서 빨리 개선해야 죽음의 급식소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이제는 급식소를 보이지 않는 음지가 아닌 양지로 나올 수 있도록 설계를 해야 할 것"이라며 "항상 급식소는 거의 학교 안 맨 구석 쪽 음지에 있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라고 했다.

이 부지부장은 "급식소를 짓기 전부터 일하는 사람과 함께 참여해서 만들어가야 한다"며 "근무환경이 낙후된 반지하 등에 있는 급식소의 경우 암 환자가 3명 이상 발생하는 학교도 확인이 된 바 있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꺼리고 들어가기 싫은 학교에 암에 걸릴 걸 예상하고 죽음의 급식소로 들어가는 꼴인 것"이라며 "이런 학교에 10년 이상 근무를 하다가 병에 걸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반지하 학교는 무조건 다시 점검을 해서 옮겨 지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민수 부지부장은 "급식시설 환경 개선", "노동강도 완화로 공공기관만큼(1인당 50명) 배치기준 하향조정", "휴가권 확보를 대체인력 확보", "노동 안전강화를 위한 직무연수 추가와 청소일수 추가"를 제시했다.

"안전한 급식소를 만들어 달라"

13년째 일해 온 정아무개 조리실무사는 "아침에 큰 가마솥 3곳에 물을 끓이는 일부터 시작한다. 집기류를 열탕 소속하고 야채를 데치고, 육류를 소독한다"며 "이러다보니 늘 크고 작은 화상이 자주 발생한다. 몇 년 전에는 다리에 큰 화상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조리사는 "학교 교직원, 교육청도 늘 우리한테 고생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들의 안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며 "당장 인력 배치기준 하향하여 나뿐만 아니라 동료의 안전도 챙기면서 일할 수 있도록, 안전한 급식소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11년간 급식소에서 일해온 전아무개 조리실무사는 "급식 시간에 맞춰 1000명의 급식을 8명 노동자가 땀에 젖은 작업복을 몇 번이고 갈아 입으면서도 제 시간에 맞춰낸다"고 했다.

그는 "2020년 3월, 함께 일하던 동료가 유방암 판정을 받고 수술 후 휴직했고, 그해 6월 저도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7월에 수술을 받았다"며 "올해 6월 한 명의 동료가 유방암 판정을 받아 항암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전 조리실무사는 "첫 발견시에는 개인의 건강 문제겠거니 하고 넘겼던 일들이 제가 당사자가 되고 또 동료가 수술 후 항암치료로 힘들어 한다는 소식은 급식소 안 모든 동료들을 힘들게 하고 공포에 떨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급식소의 나쁜 환경은 골병뿐만 아니라 서서히 우리를 죽게 한다는 걸 겪고서야 깨달게 되었다"며 "노동부와 교육부는 급식 노동자의 절박한 외침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14년 차인 정아무개 조리실무사는 근골격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숨막히는 조리실에서 바쁘게 돌아치면서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 급식, 5분이라도 배식시간이 늦어지면 학교가 난리가 나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도 배식시간에 맞춰내야 하기에 1분 1초를 다투며 일한다"고 했다.

그는 "급식노동자는 정신 없는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한의원, 정형외과 등 병원에 다니기 바쁘고, 방학이 되면 수술하거나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며 "개같이 벌어서 치료비로 다 날렸다는 우스갯소리가 웃기지만 슬프게 들린다"고 했다.

학비지부는 대책을 제시했다. 정은영 조리실무사분과장은 "과도한 노동강도를 경감하기 위한 배치기준 하향이 절실하고, 화상 등 사고 발생으로 인한 치료비 100%와 산재 휴직으로 발생한 임금손실분 보장으로 최소한의 보장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옥화 조리사분과장은 "노후되어가는 급식실 내부에는 누수, 침수, 곰팡이, 개보수 공사, 동파, 해충 등의 문제가 있고, 이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며 환기 등 쾌적한 환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민소 영양사분과장은 "급식휴게실과 영양실 환경개선이 필요하고, 영양교사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영양교사와 영양사의 심각한 차별적 저임금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학교 급식 노동자의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환기 시설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필요하고, 급식실 작업환경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학교 급식실 #학교비정규직노조 #화상 #암 #근골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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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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