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석대 고려 궁중 음악가 임천석이 나라가 망하자 이곳으로 내려와 흙집을 짓고 살았다. 이성계가 불렀으나 가지 않고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정명조
출렁다리를 건넜다. 여기부터는 길이 제법 넓다. 호젓한 길을 걸어 저승골 삼거리에 다다랐다. 바위에 빨간색으로 저승골이라고 새겨져 있다. 섬뜩하다. 고려 시대 몽골 6차 침입 때 승병들이 몽골군을 유인하여 죽인 곳이다. 살아남은 몽골군은 물러가면서 앙갚음하듯 마을을 모두 잿더미로 만들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뒤에는 이곳이 반역의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호국의 길이 되어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휴대 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두메산골 느낌이 난다. 전쟁이 나도 모르고 지나갈 성싶지만, 바깥세상이 그리 멀지 않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차가 다니는 길까지 나갈 수 있다. 구수천을 따라 병풍을 두른 듯 서 있는 낭떠러지 때문일 것도 같다.
구수천에는 낭떠러지가 많다. 그래서 물소리가 요란하다. 4탄에 있는 난가벽(欄柯壁)의 물소리가 가장 세다. 이곳은 5탄에 있는 임천석대(林千石臺)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임천석은 고려의 궁정 음악가다. 나라가 망하자 이곳으로 내려와 흙집을 짓고 살았다. 이성계가 그의 거문고 솜씨를 인정해 궁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가을에 걸으면 더 좋은 곳
농다리 두 개를 지났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마저 쉬어간다. 물은 흐르지만, 호수같이 잔잔하다. 마침내 반야사 옛터에 다다랐다. 절터는 간데없고, 넓은 평상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쉬어갈 만하나, 마른 나뭇잎만 평상 위에 쌓여 있었다.
경상북도 경계석이 있다. 경북 상주와 충북 영동이 만나는 곳이다. 백화산 호국의길은 여기서 끝난다. MRF 명품길이 틀림없었다. 다시 오고 싶은 길이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걷기 좋다. 가을에 걸으면 즐거움이 갑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