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일주일>
자음과모음
<일요일>은 성당 유치원에서 처음 만나, 초등학교 중학교 같은 곳을 나온 세 사람 민주, 도우,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습관처럼 성당에서 만나, 미사를 드리고 서로가 전부인 것처럼 뛰어 놀던 세 사람. 이들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세 사람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면서부터였다.
미사의 말미, 서로에게 멋쩍게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는 의식은 그대로였지만 그 이후의 시간은 이전과 달라진다. 도우는 미사가 끝나면 과외를 받으러 갔다. 그에겐 휴대전화나 현금 카드 같이 민주와 '나'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생겨났다. 도우는 서른살이 되기 전에 외국 대학의 교수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는 또래가 아니라 교수인 부모를 자신의 라이벌로 삼았다. 도우는 외고에 진학했다.
도우 같은 애들과는 애초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며, 세상이 '불공평하지 않냐'고 투덜대던 민주도 공부엔 열심이었다. 그는 학원에 다녔고, 공무원인 부모는 민주가 원하는 성적을 내면 한정판 가방과 신발을 안겨줬다. 민주는 일반계고에 갔다.
그리고 '내가 전셋집에 산다는 걸 알았'지만, '도우의 한 달 과외비가 얼마인지는 몰랐던', 1등을 꿈꿔본 적은 없지만 빨리 돈을 벌어 부모님에게 용돈을 주고 싶었던 '나'는 특성화고에 진학해 자격증을 따고, 알바를 하고, 현장실습을 나간다.
달라진 일상으로 인해 잘 만나지 못하던 세 사람이 다시 모이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알바를 뛰던 '나'는 도서관에 치킨 배달을 나갔다가 아이패드로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땡땡이를 치고 나온 민주와 도우를 조우한다. 그 자리에서, 도우는 치킨을 뜯으며 이런 단어들을 툭툭 뱉어낸다. '미성년자', '현장실습', '죽음'. 그 또렷한 단어들을 곱씹으며, '나'는 생각한다.
"... 지겹도록 들었다. 그게 바로 세상이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그럼 다들 그렇게 죽나? 그렇게 죽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거라고 말하면서 미성년자 실습생이 죽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살기 좋은 세상. 도우와 민주가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들에게 먼저 말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중략) 민주와 도우가 걱정하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벌써부터 나를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불행한 사람으로 보는 것만 같아서. 나는 친구들과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p.38)
쓸 수밖에 없었던 소설
<일요일>은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에게 평화를 빌어주던 세 사람의 삶이 어긋나는 지점들을 짚는다. 함께 일요일을 보내고 같은 시간을 통과해온 이들의 서있는 풍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왜 달라져야만 했는지 묻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은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며, '누구는 웅덩이에 있고 누구는 언덕'에서 '어쨌든 노력하며 아무튼 불공평하게 살고 있'는데, '제발 세상이 좋아졌다느니 젊은 애들이 문제라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일갈하기도 한다.
최진영 작가는 소설집 <일주일> 끝에 수록된 에세이, '사사롭고 지극한 안부를 전해요'에서 <일요일>이 은유 작가의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고 쓴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CJ제일제당으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직장 내 괴롭힘 등에 시달려 숨을 거둔 고 김동준군, 그리고 김동준'들'의 이야기를 담은 르포다. 최 작가는 이 책을 두고 "소설을 쓰려고 읽기 시작한 책 아니었"지만 "다 읽은 후에는 그 책을 바탕으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청소년의 삶을 타자화하거나 납작하게 묘사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의 절실했던 마음을 가늠해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은 달라졌다'며 반쪽짜리 세상만 바라보고 있는 이들과 함께, 이 소설을 이어 읽고 싶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도 더 많이 달라져야 하므로.
일주일
최진영 (지은이),
자음과모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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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 일반계고, 외고... 세 친구의 삶은 왜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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