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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없으면 육체피로 경험 3.4배 상승...현실은 이렇습니다

[노동자의 쉴 곳, 어디에 있을까?③] 휴게공간의 오늘과 내일

등록 2021.10.19 11:12수정 2021.10.2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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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실 노동자들의 휴게실 ⓒ 양선희

 
안전보건공단에서 발간한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에 따르면, 휴게시설이 없는 경우 육체적 피로를 경험한 비율이 3.4배나 높다고 한다. 일하는 이들 몸과 마음 건강이 노동을 통해 유지·증진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휴식은 노동과 반대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노동은 그 자체에 휴식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본 글에선 급식 및 건설노조 활동가들과의 인터뷰주1)를 바탕으로, 급식/건설 현장 노동자의 휴게공간 경험을 정리해봤다.

1. 급식실 휴게실- 기본도 안 된 휴게실, 여전

소수지만 휴게실이 없는 학교도 있고, 있어도 기준에 못 미치는 열악한 곳도 여전히 많다. 급식조리 노동자는 출퇴근 때마다 사복과 작업복 교체해야 해, 성별이 구별된 휴게실 마련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소수인 남성 급식조리 노동자를 위한 샤워실과 휴게실이 마련돼 있지 않아, 체육관 등에서 씻고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시골 학교에선 보통 위탁 급식을 하는 터라, 조리업무 없이 배식업무만 3~5시간 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 급식조리 노동자를 위한 별도의 휴게실이 마련돼 있지 않아, 화장실이나 숙직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기한다. 지금의 휴게실은 대체로 노동자를 고려한 휴게실이 아니라, 억지로 짜 맞춘 휴게실에 가깝다. 물론 쾌적한 공간에 속옷용 세탁기를 설치하거나 탕비실을 따로 둘 정도로, 시설이 잘 마련된 곳도 있다. 문제는 앞서 말한 사례는 너무나 소수이고, 기본도 갖춰지지 않은 낙후된 공간이 다수인 데 있다. 

좁고 답답한 곳에서 어떻게 쉬나요?

경기도 교육청에서 발간한 노후화된 급식 시설의 현대화 사업 관련 매뉴얼주2)에선, 휴게실은 최소 6㎡ 이상의 크기를 확보해야 하며, 옷장·서랍장, 사무 업무를 위한 컴퓨터 책상, 위생복 보관함, 이동공간 등 포함해 조리종사자 수 1인당 1.64㎡의 면적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수의 급식실 휴게실은 노동자들이 편하게 몸을 뉘고 쉬기에 여전히 적합하지 않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실시한 휴게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총면적이 6㎡ 미만인 곳은 124개소(9%), 1인당 1.64㎡이 확보되지 않는 곳은 482개소(35%)에 달했다. 그나마 서울보다 더 나은 상황인 경기도 소재의 학교들 역시 공간의 협소함이 주요한 문제로 꼽히고 있다.

충분한 공간 확보가 되지 않다 보니 세탁기나 빨래건조기, 옷장, 컴퓨터 등 휴게실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구를 두기조차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무리한 노동으로 인해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급식조리 노동자가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나 소파, 안마기, 제습기 등 더 쾌적한 휴게실을 꿈꾸는 건 더욱 요원하다. 

휴게실의 협소함은, 신규 학교 건설 시 예측한 학생 수요와 이에 연동되는 급식조리 노동자의 수가 맞지 않을 때 발생하기도 한다. 광명의 ㅂ초등학교는 학생 수를 1천 명으로 예상해, 급식조리 노동자 7명을 위한 휴게실을 마련했다. 하지만 현재 학생 수는 1600~1800명으로, 근무하는 급식조리 노동자는 10명에 달한다. 이에 급식조리 노동자가 충분히 쉴만한 공간 마련 역시 어려워졌다. 비슷한 문제를 겪는 다른 학교는 다른 층에 별도의 휴게실을 만들었으나, 이번엔 거리가 문제였다. 급식조리 노동의 특성상 일상적으로 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작업복은 언제나 젖어있는 상태다. 휴게시간은 20~30분에 불과한데, 젖은 옷을 입은 채 급식실과 휴게실을 오가며 이동하기가 번거로워 결국 휴게실은 무용지물이 됐다. 


앞서 말한 매뉴얼에선 휴게실이 설치 시, 자연 광원을 포함하고 통풍이 원활하도록 외부로 통하는 환기창을 설치할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창문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고, 많은 휴게실이 급식실 한가운데 있거나 교실 복도와 연결돼 사실상 창문이라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급식실과 휴게실이 반지하거나 지하에 있는 곳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얼마 전 급식조리 노동자의 폐암이 산재로 인정됐듯이 작업 공간 내부의 공기 질이 문제가 되는 급식실에서 일하지만, 이들은 휴게실에서마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형편이 못 된다.

다치고 병들고...바람 잘 날 없는 휴게실

적정 면적의 확보는 단순히 쉴만한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을 넘어, 안전사고의 예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지난 6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휴게실에 쉬고 있던 노동자의 머리 위로 옷장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사고로 4명이 부상을, 그중 한 명은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면적이 좁아 제대로 옷장을 넣을 수 없어 벽 상부에 옷장을 설치했는데, 부실하게 부착된 게 문제였다. 물론 옷장이 제대로 설치돼 있었는지 관리하고 점검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지만, 애초에 충분한 면적을 마련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안타까운 사고다.

또한 조리실, 휴게실 등에 설치된 자외선 살균소독기가 고장나 자외선이 외부로 방출되어 급식 노동자들에게 눈·피부 질환이 집단적으로 발생하기도 했다. 직접 노출 시 피부나 눈에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자외선은 잠재적 위험요소인데도, 자외선 소독기를 노동자들이 오래 머무는 공간에 두고 이후 관리에도 소홀했다는 점은 중요하게 짚어야 할 사고원인이다.

노동자가 쉴 곳, 노동자의 뜻대로

BTL(Build Transfer Lease, 임대형 민간 투자사업)이란 민간사업자가 돈을 투자해 학교 등 공공시설을 건설한 뒤 국가나 지자체에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으로, 20년간 임대료를 지불한다. 해당 방식으로 지어진 학교의 경우, 교육청에서 학교를 매입하기 전까진 내부에 손을 못 대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가 의견을 낸다 해도, 보고한 후 승낙을 받아야 관련 조처가 마련될 수 있어, 휴게실에 대한 노동자 참여권 보장이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전기실 보일러로 교체하면서 저마다 원하는 온도를 맞출 수 있도록 2개의 조절기를 설치하고, 추운 외벽에서 보온용 자재로 변경하며 페인트칠만 돼 있던 벽도 도배하는 등 최소한의 기준만을 명시한 매뉴얼을 넘어, 실제로 휴게실을 사용하는 노동자의 편의를 세심하게 고려한 일부 모범적인 사례가 있기도 하다.

2. 건설 현장 휴게실

건설 현장은 더위와 추위, 먼지와 습도 등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작업 형태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기본적인 노동강도가 높은 만큼 제대로 된 휴식이 꼭 필요한 현장이기도 하다. 관련 법령에도 사업주에게 고열·한랭·다습 작업을 하거나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휴게시설 설치 등의 의무가 있음주3)을 명시한다.

없거나 있어도 신통치 못한 휴게실

건설 현장에 마련된 휴게공간의 기본 형태는 원청 사무실에 있는 안전 교육장, 식당 등을 이용하거나 팀별로 할당된 컨테이너를 칸막이, 커튼 등으로 나눠 사용하는 것이다. 휴게실이 있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어느 정도 공사 단계가 진행되면, 작업 중인 공사 현장과 휴게실의 거리가 멀어져 이동하는 게 번거롭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아닌 오전·오후의 휴게시간엔 휴게실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건설 현장의 특성도 고려되기 어렵다. 공사 단계마다 투입되는 인원이 달라지는데, 특히 건물이 30~40층 이상 올라가면 각 층에 여러 직종이, 최대치로 투입된다. 인원이 많아지지만, 증가 정도에 비례해 휴게공간을 확장하는 건 아니어서 그나마 마련된 휴게실에서 쉴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운영 가이드'에서도 공사 진척 정도에 따라 장소나 인력 등 여러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건설 현장의 특성을 반영해 관련 지침 사항을 권고한다. 현장에 따라 옥내 휴게시설의 마련이 어렵다면 텐트나 그늘막, 간이 천막, 이동식 휴게시설 등을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천막 등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 역시 한정적이어서, 보통 지하 1층이나 1층에 설치하는 편이다. 당연히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작업 현장과 천막과의 거리가 멀어져, 이용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탓에 건설 노동자 대부분은 더위나 추위, 주변에서 진행 중인 작업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먼지·진동 등에 그대로 노출된 채 현장 여기저기에 앉거나 누워서 참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쉬곤 한다.

여성 노동자를 위한 휴게공간은 어디에?

규모가 큰 현장의 경우, 원청에서 여성 노동자 휴게실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컨테이너의 일부 공간을 나눠서 사용하곤 하는데, 협소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쉴 수만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여성 노동자를 위해 별도의 휴게공간을 내주는 경우 자체가 거의 없어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휴게실을 사용하거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차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한다. 한 사례로 지하 주차장 일부를 합판으로 막아 만든 휴게실이 있었는데, 성별을 분리해 만들지 않고 내부에 칸막이를 쳐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가 나눠 사용 중이었다. 해당 현장의 남성 노동자는 약 30명이고 여성 노동자는 8명 정도이긴 했지만, 면적으로만 따지자면 남성 휴게실이 여성 휴게실보다 10배 정도 넓었다. 이마저도 협소한 데다가 곰팡이 때문에 사용이 어려웠다고 한다.

작은 현장, 문제는 더 커

원룸 건축 등 작은 현장에선 부지 내에 휴게시설은커녕 현장 사무실조차 둘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탈의실조차 없다. 작업 공간 내에서 쉬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노동자들은 사람이 오가는 도로에서 쉬거나 자기 차에서 휴식을 청하곤 한다. 어느 건설 현장이나 고된 노동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규모가 작은 현장의 노동자일수록 더위나 추위, 미세먼지 등 신체에 유해한 환경적 요소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옥외노동은 그 특성상 노동자의 몸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여럿이고, 따라서 건설 현장의 휴게공간은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편의시설이나 샤워실·탈의실 등 현장의 전체 인원이 사용하는 시설에 대해선 시공사인 원청이 현장 관리를 하지만, 휴게시설은 하청에 미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형식상 노동자의 의견 제시가 가능한 창구가 있더라도, 하청 소속의 노동자가 휴게공간과 관련해 원청에 요구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또한 휴게실이 만들어진다 한들, 노동자보단 업체의 편의를 고려한 장소에 두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이 일터 내 휴게시설에 관한 모두의 경험을 대변할 순 없다. 하지만 특정한 몇몇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 일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의 조성이 너무나 요원하다. 노동자가 제대로 쉴 수 있으려면 휴게시간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공간 역시 너무나 필요하다. 가이드가 가이드로만, 법이 법으로만 그저 문장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 작동하는 움직임이 돼야 할 때다.

-------각주-------
1) 급식조리 노동자: 공공운수노동조합 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심영미 부지부장, 경기지부 양선희 노안위원장/건설노동자: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회 강한수 위원장, 건설노동조합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남한나 반장
2) 지역교육청마다 매뉴얼의 내용이 다르다. 다만 경기도 교육청에서 발간한 매뉴얼이 가장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내용 역시 더 다양해 본 글에선 이를 기본 자료로 삼는다.
3)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 제567조(휴게시설의 설치) ① 사업주는 근로자가 고열·한랭·다습 작업을 하는 경우에 근로자들이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② 사업주는 근로자가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 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그늘진 장소를 제공하여야 한다.
③ 사업주는 제1항에 따른 휴게시설을 설치하는 경우에 고열ㆍ한랭 또는 다습작업과 격리된 장소에 설치하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인 김다연님이 작성하였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0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노동자_휴게공간 #급식실_휴게실 #건설업_휴게실 #노동자_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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