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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필자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친환경 기업의 경영자들은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배우고, 경험하고, 살았다. 자연과 함께 켜켜이 쌓인 시간이 녹색 소비자와 환경경영인, 더 나아가 자연에 사는 사람을 빚어낸다. 안타깝게도 이 경험은 일부만이 누릴 수 있다. 산업이 발전해오면서 그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최근 모교에 다시 가보니, 마음이 아팠다. 초등학교에는 거대한 체육관이 들어섰다. 고등학교 텃밭 자리에는 기숙사가 자리했다.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의 무게가 가슴 한 켠을 짓눌렀다. 후배들에게 푸르른 학창시절을 대신하여 주어진 실내 공간이 흙을 밟고 하늘을 볼 시간을 앗아간 건 아니었을까. 자연을 느끼기도 전에 문명의 편안함에 익숙해지는 건 아닐까.
언어 교육 가설 중, 결정적 시기 가설이 있다. 결정적 시기는 본래 한 종의 생물체가 생존에 필요한 행동이나 동작을 배울 수 있는 생물학적 기간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새는 생후 50-90일 사이에 울음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이후 평생 노래를 하지 못한다. 결국 다른 새들과 소통하지 못해서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사람이 언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언어를 배울 때, 결정적 시기를 지나면 모국어를 습득하기 어려워진다는 가설이다. 그 시기를 지나면, 모국어뿐 아니라 외국어 또한 학습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뇌는 유연성을 잃어간다.
환경적인 의사결정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시기는 유년기이다. 인간이 일궈온 문명보다도 먼저 자연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태껏 자연보다 세속적인 가치를 우선시했다. 그 결과로 아이들은 점점 흙과 나무에서 멀어졌다. 책상과 의자에 붙어있는 시간은 길어졌고, 실내 공간이 많아지다못해 지금은 온라인 공간에서 살아간다.
유년기에 자연을 느끼고 경험하지 못하고 나중에 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학수학능력평가에, 취업에, 직장생활에, 육아에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인생길에서 '나'의 선택은 보다 덜 유연해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선, 생계를 위한 조건, 타인과의 관계 등 자연보다 나중에 태어났지만 우리를 더 옭아매는 것들이 사람들을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이것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어려있는 시기에 자연을 배우는 데서 나아가서 직접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이유이다. 외국어, 수학, 코딩 등을 선행학습 하기에 앞서서 고민해봤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어떨까? 그 세상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배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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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누구나 성장에 있어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 도전가인 최민정입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끈기 있게 성취하고, 그리고 함께 만들어가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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