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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것이여' 가을 한파에 얼음처럼 굳어버린 농작물들

[짱짱의 농사일기 59] 기후변화에서 느껴지는 식량위기

등록 2021.10.20 07:20수정 2021.10.20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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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내리는 비는 농사에서 쓸 데 없는 비라고 합니다. 벼와 콩, 들깨 등의 곡식을 추수하는 때에 자주 비가 내리면 작물이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매일 오늘의 날씨와 주간 날씨를 확인하는 것으로 농부의 하루는 시작됩니다. 갈수록 예측이 안 되는 날씨 변화에 농사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실상사농장 자주 내린 비 때문에 질척거리는 밭에서 양파와 마늘을 심었다 ⓒ 오창균

 
며칠 사이에 여름과 겨울


비 소식이 들려 지난주에는 서둘러 월동을 하는 양파와 마늘밭을 만들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전에 밭 준비를 마쳐야 무난하게 파종을 할 수 있어서입니다. 빗물에 흙이 젖으면 밭갈이를 할 수 없고 밀가루 반죽처럼 흙이 뭉치고 돌처럼 굳어버려서 작물 생육에 좋지 않습니다.

밭을 만드는 날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온 몸이 땀에 젖었습니다. 한여름처럼 하루에 샤워를 두 번 할 정도로 무더운 가을 날씨가 길게 갑니다. 밭을 만들고 난 다음날부터 하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그치고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질척거리는 밭에서 마늘과 양파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하루종일 비가 또 내려서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에는  아직 추수를 못한 논이 보이고 농장은 들깨와 콩을 갈무리 해야 하는데, 비 때문에 가을걷이도 늦어지고 월동작물 파종도 늦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한파주의보에 설마 했는데, 얼음이 얼고 된서리가 내렸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가을 추위에 밭에 남아 있는 작물들이 서리꽃을 피웠습니다. 뜨거운 물에 삶아진 듯 푹 처진 작물을 보면서도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실상사농장 가을한파로 얼음이 얼었다 ⓒ 오창균

 
기후위기는 식량위기

남원 실상사 농장에는 스님이 가꾸는 텃밭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매일 이른 아침마다 밭에 나와서 여러가지 작물을 키우고 돌봅니다. 이번 가을 한파에 스님이 돌보던 작물 모두가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버렸습니다. 한참 동안 작물들을 바라보면서 '어쩔 것이여...' 탄식이 나왔습니다.


스님이 농사짓는 작물은 절 공양간의 음식 재료로 모두 사용합니다. 공양을 할 때마다 어느 밭에서 온 채소라는 것을 알고 먹습니다. 갑작스런 가을 한파로 쓸 수 없게  된 작물들을 보면서 실망했을 스님과 공양간 보살님의 안타까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실상사농장 서리가 내려앉은 텃밭의 작물들은 사용할 수 없다 ⓒ 오창균

 

실상사농장 서리를 맞고 얼어버린 아욱 ⓒ 오창균

   

실상사농장 서리를 맞고 얼어버린 상추 ⓒ 오창균

   

실상사농장 서리를 맞고 얼어버린 토란대 ⓒ 오창균

 
스님은 평소처럼 같은 시간에 농장으로 나와 월동 작물을 키울 밭 만들기를 비닐하우스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작물 이야기로 인사를 했고, 스님은 여유있는 미소로 인사를 받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보여줍니다.

스님 : "밭이 저렇게 되어서 이제는 나갈 일이 없겠어요."
나 : "스님, 봄동 배추 심어보겠어요? 춘채와 재래종 시금치 씨앗도 있는데 드릴까요?"
스님 : "네. 갖다주면 심어볼게요."


농사를 시작한 이후로 최근 몇 년 동안 기후변화로 인한 농사의 어려움이 점점 가중되고 있음을 해마다 다른 형태로 느끼고 있습니다. 농촌이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는 마트에서 구입하는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것도 기후변화가 원인입니다.

이번 가을에 폭염과 한파를 겪으면서 설마했던 기후위기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느꼈습니다. 그중에서도 식량위기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일 것입니다.
#가을한파 #실상사 #기후위기 #양파 #공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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