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쓴 <'평생 기름밥 먹고 살래?'가 일으킨 나비 효과>에서
나익수
무엇보다 그가 쓴 농사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농사 공부가 되는 듯하다. 정답이 있는 농사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실험을 하며 현상에 대한 원인을 끈기 있게 찾고 열려 있는 답을 찾아가는 농사법이라 할 수 있겠다. 도시농업 활동을 하며 농사 교육을 위해, 농부들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연구하고 분석하기 위한 농사 실험을 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학 진학을 접고 전문 기술을 배울 생각으로 아이티(IT) 분야를 떠올렸다. 마침 신문에서 대학 부설 전산원(전자계산원) 수강생 모집 광고를 보고 시험을 봤다. 2년을 다니고 취업을 하게 되었다. 야근이 많고 고된 생활이 이어졌다. 직장을 몇 차례 옮기기도 했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를 맞아 맞벌이라는 이유로 실직을 하고 말았다. 같은 이유로 아내도 실직을 했다.
이때 오창균 씨는 귀농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10년 미뤄지긴 했지만 귀농의 꿈을 위해 자영업을 시작했다. 컴퓨터 튜닝이라는 사업이었다. 약속한 10년이 다가오자 오창균씨는 농사를 배워서 귀농하고자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의 1기 도시농부가 되었다.
그물코처럼 이어진 인연, 인드라망
도시농업 활동을 하면서도 귀농학교를 찾아다녔다. 이 시기(2010년 전후) 귀농학교는 단체 주도에서 관 주도로 옮겨 가던 시절이었다. 지자체가 주도하는 두 지역의 귀농학교를 다녔다. 실망이 컸다고 한다. 돈 버는 농사를 얘기하고 우리 지역으로 오라고 홍보하는 귀농 교육이었다.
농사로 큰돈을 버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일 텐데, 사람을 홀린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결국 귀농학교로 가던 길을 돌려 화천으로 귀농한 친구를 찾아갔다. 하룻밤 묵으며 귀농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인드라망귀농학교를 추천해 주었다. 좀 다를 거라며.
망설이지 않고 인드라망귀농학교를 다녔다. 삶의 전환을 생각하고, 돈을 벌기 위한 농사가 아닌 자연과 연결되는 농사 철학을 깊게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다닌 뒤로는 인드라망귀농학교에서 농사 교육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영등포 하자센터 작업장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농사 교육도 하였다. 나아가 인드라망 회원 소식지 일까지 거들며 취재도 하게 되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고 있었으니 사람들을 만나 글을 쓰고 농사 이야기를 연재하는 재미가 더욱 커졌다고 한다.
도시농업 활동과 귀농학교에서의 배움으로 귀농의 꿈은 점점 굳어져 갔다. 게다가 시흥 농장에서 7년여간 직접 농사도 지어 보았다. 시흥 농장 지역은 개발 얘기로 점점 땅 투기장이 되어 갔다. 어수선하기도 하고 떠날 바에야 빨리 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2020년 가을 농사를 끝으로 시흥을 떠났다. 귀농할 곳을 찾아 괴산도 가 보고 제주도 가 보고, 아는 사람도 찾아다녔다. 농사지을 땅은 많은데 살 곳이 없거나 마땅치 않았다.
조심스레 인드라망 실상사 농장을 떠올렸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농장이다. 다만 공동체라는 것에 부담이 있었다. 뭔가 규율을 따라야 하고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공동체 숙소가 있으니까 살 곳은 확실한테 '공동체'가 주는 선입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인드라망에 연락을 해 보았다. 무조건 와라, 일단 와 보라. 이런 얘기가 나왔다.
바로 가지는 못하고, 귀농지를 알아볼 겸 일손을 돕기로 약속한 괴산과 제주에 먼저 가야 했다. 그런데 인드라망공동체 농장에서 언제 오냐고 연락이 왔다. 이미 오기로 한 걸로 받아들였나 보다. 그렇게 해서 올해 초부터 스님들 숙소였던 화림원에 짐을 풀면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