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의 보장이며 권리의 시작, 출생의 공적 확인

[출생확인증 조례를 위한 시흥시민의 연대 2]

등록 2021.10.22 10:45수정 2021.10.2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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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 주민들은 현재 '시흥시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주민청구 조례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출생확인증이란 태어난 모든 아동에게 발행하는 시흥시의 증서입니다. 출생 즉시 모든 아동의 존재를 기록하는 시흥시의 공적 책무를 촉구하고자, 그와 함께 사회 구석구석 관심의 눈길을 넓히고자, 조례제정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아동이 출생 직후 차별 없이 존엄함을 존중받는 아동친화도시 시흥시를 소망하며, 앞으로 총 5회에 걸쳐 “출생확인증 조례를 위한 시흥시민의 연대”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 글은 우리동네연구소와 함께 출생확인증 조례 운동을 기획하고 참여 중인 김희진 변호사(국제아동인권센터 전 사무국장)가 작성했습니다.[기자말]

출생확인증 조례 제정 운동 리플렛 (앞면) 출생확인증 조례를 홍보하며, 서명운동 참여자와 연대 기관에 배포하는 리플렛이다. 앞면에는 출생등록에 대한 권리를 안내하며, 조례의 의미와 필요성을 설명한다. ⓒ 국제아동인권센터

 
"모든 아동은 출생 후 즉시 자신의 존재를 차별 없이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 '​​​​시흥시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안)' 제2조(기본이념)

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이들 중 한 명이 조례안 제2조에 대한 질문과 의견을 제시했었다.

"출생한 아동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안 맞지 않나 싶습니다. 출생한 아동이 즉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출생확인증 조례'를 제정하려는 취지를 생각해 볼 때 '모든 아동은 출생 후 즉시 그 아동의 존재가 차별 없이 증명될 수 있어야 한다(증명되어야 한다)'로 표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시흥시 조례운동 서명권위임자)

인권의 주체는 인간, 사람이라고 한다. 아동도 인간이다. 그렇다면 아동의 권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권리와 같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존엄성과 권리의 향유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사람은 존재하는 모든 순간이 온전한 인격체로서, 삶의 궤적 전반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당사자이다. 아동 또한 같다. 생명에 대한 권리의 주체도, 자라남에 대한 권리의 주체도 아동이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어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그 사람'의 천부인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동은 살아있는 자체로 자신의 존재성을 말한다. 다만, 나이와 발달적 특성상 아동의 권리가 실현되는 결과에 주변의 조력이 필수적일 뿐이다. 공동체를 전제하는 권리의 실현은 마땅히 의무를 수반하지만, 의무는 권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가 증명되는 것이 아닌, 존재를 증명한다고 문구를 두었다.

한편, 서명권위임자로 참여하는 그이의 의문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본적 권리를 갖고 있으며, 동등한 존엄성에 어떠한 의문도 없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존재'를 증명하기를 요구받는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강요받고, 성적으로 줄 지워지고, 장애 여부와 인종과 국적 등으로 구분되며, 경제상황과 가족형태를 증명하여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있는 그 자체로 인정받기는커녕,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면 권리를 침해받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그러하니, 자유로운 신체활동은 물론 언어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영유아가 스스로 존재를 '증명'한다는 문장은 어색할 수 있다. 존재가 증명될 수 있도록, 우리가 뭘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출생확인증 조례 제정 운동 리플렛 (2)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한 사람의 태어남을 우리 사회가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주민참여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방법을 소개한다. ⓒ 국제아동인권센터

 
그래서 강조하고 싶었다. 아동은 나의 존재를 매 순간 말하고 있고, 그 증명이 당연하도록 제도가 필요한 것임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증명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말이다. 출생확인증은 그 권리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시흥시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안)'은 출생확인증이 아동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공적 의사표시이자, 아동의 존재가 효과적으로 인식되는 행정작용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따라서 조례안의 대상은 '모든 아동'이다.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른 출생신고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출생확인의 신청으로 보고, 가족관계등록법상 출생신고가 어려운 경우에는 별도의 출생확인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조례안 제5조, 제6조).

국내법상 부모가 출생신고하는 아동도, 부모가 출생신고의 의지는 있지만 법적·행정적 절차상의 어려움이나 현실상의 문제(유전자 검사 비용, 소송비용, 미혼모·미혼부에 대한 편견, 법률혼과 친생추정의 문제 등)로 당장의 출생신고가 미뤄지는 아동도, 또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거나(고의든 과실이든) 할 수 없는(외국인이라서) 아동도 아우를 수 있는 절차를 정한다. 조례안에 따른 출생확인증은 배제되는 아동에 대한 뒤늦은 권리구제가 아니라, 아동에 대한 권리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행정작용이기 때문이다.

시흥시장은 적극적인 출생확인 신청을 통해 복지의 사각지대에 밀려나기 쉬운 출생미신고 아동을 제도의 틀 내에서 보호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출생신고를 통해 출생이 등록되는 아동과 그렇지 않은 아동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실효적인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주민의 복지증진, 특히 아동·청소년의 보호와 복지증진이라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충실하여, 모든 아동에게 누락없이 복지를 제공하고 최대한의 복지를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아동이 '나 여기 있어요' 힘들여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아도, 당연히 아동의 존재를 인정하려는 '공적 의지'도 필요하다. 이에 출생확인증 발급과 동시에 각종 지원 사항(출산장려 및 다자녀가정 지원, 한부모가족 지원, 외국인주민 및 다문화가족 지원, 아동급식 지원, 공공의료지원 등)을 안내하고 연계하며(조례안 제7조), 최대한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른 출생등록이 가능하도록 법적·행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출생등록 전이라도 아동보호체계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하는 규정(조례안 제9조)을 두었다.

지자체장이 부모를 대신하여 출생신고할 수 있는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제4항에 따른 지자체의 책무를 강화한 것이며,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하지 않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아동보호에 필요한 도움과 지원은 무엇일지 선제적으로 접근하는 공공의 움직임을 의도한 것이다.

조례안의 문구와 숨은 의도를 상기하며, 다시 출생의 순간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살아있는 자체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누군가 그 존재를 인정해주어야 비로소 살아있음이 확인된다. 증명되는 것이 맞긴 하다. 혼자 자유로이 몸을 움직일 수도,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기도 어려운 영유아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역시나 증명된다는 것은 증명에 대한 권리가 있기에 가능한 결과이다. 권리와 의무가 서로 지탱하는 사회구조 속에 우리 또한 증명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고, 증명받음에 감사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너무도 당연한 이 권리는 누군가의 보호 아래 지켜졌고, 이제는 그 보호를 제공할 수 있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출생의 확인이 모두의 역할로 이해되어야 할 이유이다.

또 하나, 힘들여 애쓰지 않아도 나를 알아보고 인정하는 누군가도 어딘가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단 하나의 주체를 고르라면 그건 단연코 공공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다. 주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라면, 권력의 주인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기꺼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1만 명의 서명이라는 쉽지 않은 운동을 시작한 낱낱의 준비 과정은, 공동체의 연대의식과 공공의 책무를 촉구하는 주인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조례운동과 관련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www.instagram.com/siheung_lightitup/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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