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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으로 만졌다는 소대장, 합의서 쓰라는 지휘관

[군폭, 이게 현실이지 말입니다③] "장난으로"... "심심해서"... 군폭 가해자들의 공통 변명

등록 2021.11.19 07:25수정 2021.11.1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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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서욱 국방부장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속 군대 모습을 두고 "지금의 병영 현실하고 좀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0년 이후 선고된 군 구타·가혹행위 판결문 183건(민간법원 134건, 군사법원 49건)을 분석했습니다. 판결문에 담긴 군 구타·가혹행위의 심각성과 근절되지 않는 구조적인 이유 등을 일곱 차례에 걸쳐 보도합니다. 이 기사는 그 세 번째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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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D.P. 속 대표적인 가해자 황장수 병장의 가혹행위 장면. ⓒ 넷플릭스


생활관 마루에 걸터앉아 후임병들의 어깨 마사지를 받으며 '새우깡'을 씹던 황장수 병장이 갑자기 과자를 던지기 시작한다. 과녁은 이준호 이병의 뒤통수. 성폭력을 동반한 언어폭력과 함께였다.

이유는 없었다. 이 이병이 참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황 병장을 쳐다보자 다시 욕이 날아온다. "저 표정 봐라 XX... 군대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이 장면은 다수 시청자들게 군대 내 일상적 폭력을 각인시킨 대표적인 장면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왜 저러는 거야?"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유 없는 폭력 앞에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는 군 구타·가혹행위 피해자들의 상황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현실은 어떨까.

 "장난이었다"

"아오 조 패고싶네."

역시 이유는 없었다. 2019년 10월 오후 4시 20분 경북 포항 남구의 한 해병대 생활반. 가해자는 앉아서 쉬고 있는 후임병 위로 갑자기 올라탔다. 침상에 눕힌 뒤 양손 주먹으로 피해자를 20~30여 차례 폭행하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피해자에게 그가 말했다. "갑자기 왜 패냐고? 심심해."

'심심해서' 저지른 가혹행위는 그해 11월에도 이어졌다. 가해 선임은 후임의 명찰 실밥을 제거해주겠다며 터보라이터를 켠 뒤, 뜨겁게 달궈진 라이터 화구를 피해자의 오른쪽 손등과 이마, 목에 대고 지지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전치 2주, 2도 화상을 입었다. 대구지법 1심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이 사건 가해자가 받은 형량이다.


성폭력의 경우엔 "장난이었다"는 변명이 가해자들의 입에서 공통으로 등장한다. 불시에 성기를 만지거나, 가슴을 주무르는 등 장난이라고 보기 힘든 강제추행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파주시의 한 전투 지원 중대 소속이었던 피해자는 지난해 5월과 6월 두 차례 선임 병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그만하라'고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추행은 반복됐다. 오히려 "나 왜 피해? 다른 선임이랑 왜 다르게 대해?"라고 피해자를 책망했다.

법정에 선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친근감의 표시이거나 장난으로 행한 것일 뿐 고의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피해자의 진술은 달랐다. "영문도 모른채 갑자기 당하니 '강간을 당하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피해 후임병사가 수사기관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재판부는 단호했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선임병일 뿐 피해자와 밀접한 신체적 접촉을 장난으로 할 정도의 친분 관계는 아니다." 군대 내 계급 간 관계에서 '장난으로' '친해서' 행할 수 있는 행위에는 폭력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질타였다. 가해자는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문제는 이 같은 인식이 가해자 한 사람 뿐 아니라, '조직 보신주의'에 갇힌 지휘 시스템 때문에 관행처럼 반복돼 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9년 연말, 강원도 인제군의 한 포대에서 소대장이 병사들을 상대로 몸을 간지럽히다가 성기를 움켜쥐는 추행을 반복한 사건을 보면, 해당 부대의 포대장은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에게 2차례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권한다.

가해 소대장은 생활관과 취사장, 승용차 뒷좌석 등 여러 장소에 병사들을 불러 앉혀 이 같은 추행을 저질러 포대장의 지시로 '공개 사과'를 했음에도, 또다시 동종 범행을 저지른 상습범이었다. 그는 법정에서도 "장난이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했고, 피해자들은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당시 제3군단 보통군사법원 재판부는 변호인 선임 전 접수된 피해자의 합의서를 판단하면서 "포대장과 아직 군 생활이 1년 이상 남은 병사인 피해자의 관계를 고려하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합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결국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유 없는 폭력'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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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발간한 군대 내 인권 실태 보고서를 보면, 병사들 간 언어 폭력이 발생한 원인 중 가장 높은 답변은 "관행(19.4%)"이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10.1%)"는 그 뒤를 이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군대에서의 '이유 없는' 폭력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발간한 군대 내 인권 실태 보고서를 보면, 병사들 간 언어 폭력이 발생한 원인 중 가장 높은 답변은 "관행(19.4%)"이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10.1%)"는 그 뒤를 이었다. 강제적 성적 행위를 겪은 상황도 "휴식이나 게임 시"가 53.8%로, 가장 낮은 수치인 "처벌이나 기합 줄 때(3.8%)"를 압도했다.

전문가들은 "군대는 이래도 된다"는 오랜 인식이 뿌리깊게 군 조직에 박혀 있는 이상, 군 구타·가혹행위는 쉽게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군에서 인권 업무를 담당하다 최근 전역한 한 장교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군에 오기 전까지는 계급에 의한 권력을 알지 못했던 이들이, 내리갈굼을 겪으면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계급을 통해 습득하게 된다"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군의 오랜 인식과 문화를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역시 "그렇게 해도 된다"는 인식의 학습이 '이유없는 폭력'의 근본 원인이라고 짚었다. 김 국장은 "군대 왔으니 이 정도로 해도 되고, 이렇게 해야 사람이 인간다워진다는 마인드가 축적되다 보니 '친밀해서 장난으로 그랬다'는 말이 나온다"라면서 "더 무서운 것은 전역 후에도 이런 학습이 '옳다'고 생각하고, 직장내 괴롭힘 등 '군대 문화'로 이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드라마 <D.P.> 후반부, 탈영한 구타·가혹행위 피해자 조석봉 일병은 격투 끝에 납치한 가해자 황장수 예비역 병장에게 묻는다. "저한테 왜 그러셨습니까?" 황장수 예비역 병장은 억울한 듯 답한다. "우리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조 일병은 그 말 끝에 다시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의 멱살을 움켜쥔다.

'그래도 되는 폭력'은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2019년 국가인권위 군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에서, 병사들이 제시한 인권 개선 우선 요청 사항 상위 답변은 곧 그 대안이기도 했다. 병사들은 이 조사에서 "부대의 지휘통솔, 교육방법 개선(15.2%)", "선임병의 인식과 태도 개선(14.3%)", "신고 및 인권구제제도 개선(12.5%)" 등을 요구했다.
#DP #군폭 #폭력 #군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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