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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국'의 핼러윈, 캐나다의 풍경은 이랬습니다

집 꾸미기에 열 올리고, 과자 포장해 내놓고... 여느 때와 같이 북적이던 핼러윈

등록 2021.11.02 10:14수정 2021.11.0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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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쌀쌀해지는 가을로 접어들더니 어느새 핼러윈이 되었다. 매년 10월 마지막 날은 핼러윈 데이다. 한국에는 없는 명절, 핼러윈은 이곳 캐나다에선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행사날이다.


아이들은 마음껏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몰려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사탕을 안 주면 말썽을 부리겠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집주인은 사탕을 한 움큼씩 집어주는 놀이를 하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다. 
  

분장을 하고 사탕을 얻으러 온 아이의 모습 ⓒ 김정아


핼러윈은 원래 켈트족의 연말 축제였다고 한다. 그들의 연말은 추수가 끝나는 계절을 말하는 것이니 시기가 맞아떨어진다. 이 전통은 아일랜드로 이어졌고, 여기서 '잭 오 랜턴 (Jack-o'-Lantern)'이 탄생한다.

술주정뱅이 잭이 자기 목숨을 거두러 온 저승사자를 골탕 먹여서 생명을 연장하는 하는 바람에, 그 벌로 천당도 지옥도 못 가고 구천에 떠돌게 되었고, 저승사자에게 불쌍한 처지를 호소하여 작은 불씨를 얻어 무에 담아 가지고 다녔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 이야기가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무가 호박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집집마다 큰 호박을 사서 안을 파내 잭의 얼굴을 만들고 안에 등불을 켜서 장식한다.

사탕을 더 넉넉하게 준비한 사람들 
 

호박을 파서 만든 장식들. 저 뒤로 잭오랜턴이 보이고, 그밖에 창의적은 호박파기 장식들도 놓여있다. ⓒ 김정아


사실 핼러윈이 상업적인 행사라는 논란은 많지만, 오히려 코로나 이후로 외로움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집 장식에 공을 들이고, 아이들의 사탕을 넉넉히 준비하는 것 같다.

우리 동네는 진작부터 많은 집들이 공들여 장식을 하였다. 매년 한 가지씩 장식품을 늘리는 집들은 정말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어떤 집들은 잘 꾸민 것으로 유명해져 신문에 나기도 한다. 
 

할로윈 장식을 한 집들. 사탕을 나눠주기 위한 테이블도 마련되어있다. ⓒ 김정아

 
코로나로 달라진 것이라면, 예전에는 문을 두드리면,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과자를 집어주었는데, 이제 얼굴을 가까이 마주대고 손으로 집어서 나눠주는 것이 부담스럽다 보니, 그냥 마당에 자리를 펼쳐놓고 과자를 미리 봉지에 담아서 하나씩 스스로 집어 가게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거리두기를 위해서 긴 집게를 이용해서 집어주기도 했다.
 

분장하고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아이들. 사탕을 나눠주는 사람들도 분장을 하기도 한다. ⓒ 김정아

 
우리 부부 역시, 올해도 작년처럼 준비를 했다. 과자, 사탕이 꼭 몸에 좋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날은 아이들이 풍족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남편은 늘 사탕을 넉넉히 준비한다.


대형 마트에서는 핼러윈용으로 판매되는 소포장 과자가 있다. 여러 가지 과자가 종류별로 들어있어서, 한 봉지만 구입해도 다양한 종류를 나눠줄 수 있어서 좋다. 남편은 그런 봉지와 상자를 8개나 사 왔다. 
 

산더미같은 과자박스를 준비하였다 ⓒ 김정아

 
그걸 작은 소포장 봉지에 7~8개 정도 담아서 한 꾸러미를 만들었다. 그렇게 100여 개를 만들었고, 작은 감자칩 봉투를 하나씩 얹어서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다가는 모자랄 거라고 좀 적게 담자고 했지만 풍족하게 주고 싶은 할아버지 같은 마음을 말리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마당 앞에 천막을 치고, 전구와 인형으로 장식을 한 후, 우리도 약간의 분장을 한 채 앉아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줬다. 역시 예상대로 모자라서, 결국은 감자칩과 과자꾸러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200명 정도의 아이들이 다녀갔다.

추운 날씨를 녹여준 따스한 정 
 

스스로 집어가기 편하게 진열을 해 놓았다. ⓒ 김정아

 
귀엽게 장식을 하고 와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까먹고는 눈만 껌뻑거리다가 사탕을 받아가는 아이를 보면, 뒤에서 부모가 참견을 한다. "고맙습니다, 해야지!"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하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며 고르는 아이들도 있고, 이렇게 많은 것을 다 가져가도 되느냐고 묻는 아이도 있다.

두 개 한꺼번에 가져가라고 포개 놨는데, 무심코 집어가다가, "어머 두 개네!" 하고 재빨리 하나 도로 갖다 놓는 아이도 있고... 각각의 아이들의 성격이 보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쑥스러워하는 아이, 당당한 아이, 간신히 걷는 갓 돌 지난 아기, 다 큰 청소년, 모두 한 마음으로 행사를 참여한다. 

그렇게 저녁 6시부터 두 시간을 앞마당에서 보냈다. 날이 추워서 옷을 겹겹이 껴입고, 이웃집과 종종 이야기도 나누고, 한국 초코파이 사놓은 것도 나눠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지나가는 부모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지역 온라인 게시판에는, 집에서 자가격리 중인 아이가 있으면 사탕을 배달해주겠으니 주소를 적어달라는 따뜻한 글도 올라왔다. 두 집의 주소가 덧글로 달렸는데, 사탕을 얻으러 다니던 사람들도 들러서 오히려 사탕을 주고 왔다는 따뜻한 이야기도 다시 게시판에 올라왔다.

결국 이런 행사의 즐거움은 역시,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데에 있다. 다양하게 꾸민 사람들의 재치와, 신이 난 아이들의 웃음과, 사탕을 나눠주는 사람들의 다정함이 추운 날씨를 녹여주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부대끼며 나누는 정이 아쉬운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욱더 정성껏 핼러윈을 준비했고, 우리는 이렇게 해서라도 서로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을 다시금 생생하게 느끼는 하루를 만들 수 있었기에 감사한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brunch.co.kr/@lachouette/)에도 같은 내용이 실립니다.
#할로윈 #함께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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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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