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외출 채비를 하신다.
pixabay
어머니의 중대결심
모처럼의 휴일, 마음먹고 게으름을 부리는데 어머니께서 외출 채비를 하신다.
"어디 가시게요?"
"보건소."
"뭐 하러요?"
"치매검사."
단답형의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어머니 말씀인즉 절친 중 한 분이 동네 보건소에서 무료로 치매검사를 받으셨는데 괜찮다며 권해주셨다는 거였다. 공짜라니 이참에 당신도 하련다고 하셨다. 의당 내가 모시고 가야 했다.
"기다리세요. 금방 씻을게요."
"됐다. 택시 타면 된다. 넌 좀 쉬어라."
일 나가 있다면 모르지만 집에서 펑펑 쉬면서 그럴 수야 없는 노릇이다. 나는 짐짓 '누굴 천하에 불효자식 만드시려고' 툴툴대며 욕실로 들어갔다. 말씀은 그리 하셨어도 어머니는 아마 거실 달력에 표시해 놓은 나의 비번 일정을 보고 날을 잡으신 듯했다. 세수만 서둘러하고 나오니 못 이기는 척,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계신다.
코로나로 보건소 주차장은 폐쇄됐다. 어머니 먼저 보건소 앞에 내려드리고 인근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쫓아갔다. 치매검사장은 4층에 있었다. 올라가 찾아보는데 영 보이질 않았다. 덜컥 걱정스런 마음이 들어 전화를 걸어보니 2층 상담실에 계시다고 했다. 한달음에 내려갔다. 마침 어머니께서 복도 끄트머리의 한 사무실에서 나오고 계셨다.
"아, 아드님이신가 보네요. 어머니께서 연명치료거부 사전의향서를 쓰셨어요."
뒤 따라 나온 직원 분께서 그리 말씀해 주셨다. 그제야 나는 어머니가 그걸 신청하시려 날을 잡은 걸 알았다. 미리 말하면 내가 또 괜한 소리로 시끄럽게 할까 봐 일부러 치매검사를 핑계 삼아 오신 게 분명했다. 사실 어머니는 이 제도가 시행될 때부터 신청하시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병원에 계시는 걸 보시고는 더 성화를 내셨었다.
나보고 빨리 좀 알아봐 달라고 했지만 나는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 하지 않았다.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 생각해서였다. 자식이라면 설사 그런 상태까지 가셨다 하더라도 끝까지 포기 않고 지켜드리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도저히 내 손으로 모시고 가 그럴 수는 없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하염없이 미뤄만 왔다.
보건소에서도 그걸 하는지는 몰랐다. 정부가 지정하는 병원에서만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바뀐 모양이었다. 아마 어머니 친구분이 그 정보까지 알려주셔서 작전을 짜신 것 같았다. 상담실을 나서는 어머니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셨다. 하지만 나는 괜스레 죄지은 기분이었다. 노모가 그러신다는 데 장남이란 자가 에스코트나 하고 왔으니 참 못나 보이기도 했다.
계면쩍은 마음에 서둘러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4층 치매검사소로 올라갔다. 거기 직원분들이 친절하게 맞아 주셨다. 그분 중 한 분께 어머니를 인계해 드리고 대기실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정이 복잡했다. 공연한 마음에 어머니께서 하신 연명치료거부가 뭔지 다시 찾아봤다.
'치료를 통해 회복하여 삶을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단순히 생명연장을 위한 시술과 처치를 받으며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거부하고 존엄하게 사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
흔히 말하는 '식물인간'의 상태에서 인공호흡기 등으로 겨우 생명만 유지하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를 자발적으로 거부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솔직히 그게 존엄한 죽음일까 하는 것까진 확신할 수 없지만 '그거 산 사람에게도 누워있는 사람에게도 못 할 짓'이라는 어머니 말씀엔 일정 정도 동의했다. 실제 주위에서 그런 분들을 여럿 본 때문이다.
하지만 매우 희귀하긴 해도 식물인간이었다가도 기적적으로 회생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우린 식물인간의 상태가 어떤 건지 정확히 모른다. 의학적으로는 의식이 전혀 없다지만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내가 주저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멀쩡히 의식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라 해서 기적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 않는가, 모르긴 해도 세상 자식들 다 나와 같을 거다. 하지만 이 세상에 우리 어머니 고집 꺾을 자는 아무도 없다. 이렇게가 아니라도 어머니는 달리 어떻게든 하셨을 터다. 사달은 이미 벌어졌다. 그러니 어쩌랴, 이 마당에선 그저 받아들일 밖엔.
아들보다 센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