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속의 언어들을, 요즘 학생들의 내면 상태라고 확대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마음(생각)과 함께 다닌다. 학생들이 써놓은 메모지를 들여다보면 덜컥 겁이 날 때가 있다.
김승일
간혹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언어들도 섞여 있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올 수 없는 언어들이 거기 있었다. 아예 언급이 불가능한 것들도 있었다. 그날, 거기에도 급식체의 불편함을 상회하는 욕설, 패드립, 성드립이 존재했다. 어떻게 그런 언어를 공유할 수 있을까. 요즘 학생들은 이렇게도 솔직하구나.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것을 정말 솔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언어들은 솔직함을 가장하여, 우리 모두에게 무례했던 것은 아닐까.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모두에게 예의 없는 말. 부끄러움을 모르는 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희망도 예의도 없는 언어들 사이에서 여전히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한 가지의 언어가 있었다. 학교폭력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언어였다. 명백한 SOS 신호였다. '제발'이라는 말이 그 문장 끝에 붙어 있었다. 간절했던 그 구조 요청의 말은 왜 그때까지 누군가에게 온전히 닿지 못하고, 나에게까지 오게 되었을까? 무기명으로 전달된 한 학생의 현실이었다. 어둠 속에 갇힌 어떤 학생의 간절한 생존 신호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볼까? 수십 번을 고민했다. 이미 수백 명의 학생들이 우르르 대강당 밖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그 고민의 언어가 정말 사실이었다면, 그 학생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날 이후에 어떤 희망을 발견했을까. 누군가 가까스로 그 학생의 손을 잡아주었을까? 너무 심심하다는 말과 너무 죽고 싶다는 말 사이에서 간절하게 떨고 있는 말, 여전히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 급식체에 가려져 있던 학생들의 간절한 언어가 우리의 삶 어딘가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학교를 나오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까 그 메모지, 차라리 악동들의 장난이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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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없는 학교를 소망합니다. 제 첫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학교에서 낭독합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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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체(給食體)에 가려진 요즘 학생들의 진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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