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11월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유성호
#. "구청 출입기자로 국장들을 잘 안다. 도서관 계약직 공고 나면 딸 취업 시켜 주겠다." 전남 광주의 A기자가 공공기관 취업 알선을 대가로 받은 돈은 2017년 한 해 동안 총 1억2700만 원. 확인된 피해자만 7명이다. 어떤 이에겐 '구청장의 기자 친구'라며, 또 다른 이에겐 '농협 조합장과 친하다'며 알선을 반복하다 수사기관에 적발됐다. 2018년 12월 1심에서 징역 1년 8월에 처했다.
#. 취재원의 법인 카드를 내 돈 마냥 쓴 기자도 있다. 지난해 8월 수원지법 여주지원에서 징역 1년의 집행유예를 받은 한 여주시 신문사의 B발행인이다. 한 모래채취 업체가 당진시청으로부터 관련 면허 연장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기사를 청탁하며 법인 카드를 건넸다. B발행인은 기사를 썼고 2016년부터 2년간 1420만 원어치 카드를 긁었다. 배임수재 및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이 선고됐다.
기자 직무를 사익 추구에 동원해 범죄로까지 번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대부분 공갈, 배임수재, 협박, 알선수재 등 혐의다. 기자로서 알게 된 정보와 인맥으로 이익을 취하거나, 취재원을 보도로 협박·회유해 금전을 얻는 사건이 전국에서 발생한다.
기자의 사익 추구 문제는 최근 '대장동 개발 특혜' 논란에서도 드러났다. 화천대유자산관리 소유자로 뇌물공여 혐의를 사는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은 현직 시절 부동산개발업에 뛰어들면서 화려한 '취재원 인맥'까지 사업에 동원했다.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박영수 전 특검 등 검찰·법원의 고위직 출신을 회사 법률 고문으로 앉혔고, 일부와는 개발이익을 공유했다는 의심도 산다.
<오마이뉴스>는 2018년부터 올해 10월까지 대법원 판결문 열람 사이트에서 '기자'를 검색해 기자가 피고인이나 공범으로 연루된 형사사건 1심 판결문을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 형사사건 120건 중 기자들이 직무를 사익 편취에 활용해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72건(60%)을 차지했다. 사건은 서울부터 인구 10만 명의 시·군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었다.
기자의 인맥이 알선·청탁 도구로 전락
120건을 주요 혐의별로 정리하면 ▲공갈 등(34건) ▲명예훼손 등(15건) ▲사기 등(14건) ▲공직선거법 위반(9건) ▲알선수재 등(8건) ▲배임수재(7건) ▲성범죄(6건) ▲강요·협박 등(5건) ▲공무집행방해 등(5건) ▲뇌물공여 등(3건) ▲부정청탁금지법 위반(1건) 등이다. 나머지 13건은 상해, 음주운전, 횡령, 증권거래법 위반,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등이다.
직무를 사익 추구에 동원한 사건은 공갈, 사기, 알선수재, 배임수재, 강요·협박, 뇌물공여, 부정청탁금지법 등 7개 혐의 사건, 총 72건으로 압축된다. 지역별로는 대전·충남(20건), 수원 등 경기남부(18건), 서울(17건), 광주·전남(17건), 의정부 등 경기북부(9건), 인천·부천(7건), 강원(7권), 충북(6건), 전주·전북(6건), 창원(2건), 제주(1건) 등으로 나타났다.
문제 기자들의 수단은 크게 3개였다. 인맥, 보도할 권한, 그리고 '기자증' 자체다. 인맥은 대부분 공공기관이나 지역 산업·금융계 등을 출입하며 쌓은 취재원과의 관계였다. '시청을 오래 출입해 관계자들을 잘 아니 계약 수주를 도와주겠다'며 알선 수수료를 편취하는 방식이다. 특히 지역의 경우 한 기자가 같은 기관을 오래 출입할 수 있어 인맥을 활용하는데 용이했다.
광주교육청을 출입한 C기자는 2018년 1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공무원 취급 사무와 관련해 청탁·알선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다. 기자가 교육청이나 각급 학교에 계약 편의를 도모해줘 계약이 성사되면, 계약금의 17~25%씩 업체로부터 수수료로 받았다.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4건, 2013년부터 5년 동안 4개 업체에서 받은 금품만 약 2억 8800만 원에 달했다. 충남 금산의 한 급식용 식탁 제조업체에서 가장 많은 알선비 2억 490여만 원을 받았다.
경기 여주시 소재의 언론사 D대표와 E기자도 똑같은 범죄로 지난해 8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18년부터 지역 개발 사업 등의 민원을 가진 업체에 '관련 공무원을 만나 청탁을 해준다'며 알선 수수료를 받았다. 이런 알선 행위만 8건을 반복한 끝에 수사기관에 적발됐으나 재판에선 3건만 유죄로 인정됐다. 1심 판사는 "여주 지역 신문사 대표라는 지위를 이용해 전·현직 여주시장, 여주시의회 의장, 의원 및 시청 공무원 등과 두루 친분을 유지해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