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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줍' 하면 골치 아픈 담배꽁초... 심지어 이런 사람도

[최지선의 아주 가까운 곳의 정치] 쓰레기 담으며 걷기 응원하는 지자체들

등록 2021.11.10 13:30수정 2021.11.1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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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지인들과 함께 잠실한강공원 인근에서 플로깅(산책하며 쓰레기를 줍는 행위. '줍깅'이라고도 한다)을 했다. 한강변에 버려진 컵라면, 과자봉지, 맥줏병 등의 쓰레기를 보며, 전날밤 벗과 함께 컵라면 한 사발에 맥주를 들이켰을 누군가와 괜히 연결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묻고 싶어진다. '좋은 시간을 보내신 것 같긴 한데, 뒤처리는 왜 안 하고 가셨나요?' 윤동주 시인의 시도 떠오른다. 꽁초 하나에 사랑과,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에 쓸쓸함과, 과자봉지 한 장에 동경과, 어머니, 어머니(응..?)

한국인들이 자라며 부모한테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 정도 되겠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줍다 보면,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는 말이 절로 나오며 부모님 생각이 나기도 한다.

주변에 적극적으로 플로깅하는 분들을 보면, 다른 사람이 버리는 쓰레기를 치우며 보살피는 마음인 것 같아 숭고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처음에 이 '플로깅'이란 말이 참 생소했다.

담배꽁초의 해악
  
 지인이 동네에서 주운 쓰레기로 만든 '쓰레기 아트'
지인이 동네에서 주운 쓰레기로 만든 '쓰레기 아트'노주형
 
1년 쯤 전부터 부산 사는 한 지인이 소셜미디어에 플로깅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동네를 걸으며 주운 쓰레기와 담배꽁초로 글자나 모양을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쓰레기 아트'였다. 뭔가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어 보여 나도 해보고 싶었는데, 쉽게 엄두가 나진 않았다. 봉다리와 집게 또는 장갑을 구비하고 밖에 나가는 게 귀찮게 느껴졌고, 쓰레기를 줍는 내 모습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괜히 의식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프로그램에 참가한 계기로 동네 친구와 함께 플로깅을 해봤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호숫가에서 쓰레기를 주웠는데 의외로 재밌었다. 쓰레기를 줍는 게 뭔가 보물찾기같은 쏠쏠한 재미도 있고, 자동차 범퍼나 표지판, 돈, 휴대전화 같은 특이한 쓰레기를 줍는 재미도 있다. 산책하며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동네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플로깅을 하는 소소한 줍깅모임을 시작했다.

길에서 가장 많이 줍게 되는 것은 단연 담배꽁초. 많은 분들이 모르는 사실이, 담배꽁초가 플라스틱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담뱃잎과 종이는 자연분해될 수 있지만, 꽁초의 필터 부분이 플라스틱 섬유 소재로 돼 있다(작은 물티슈를 뭉친 것과 비슷하다). 무단투기된 꽁초는 강과 하천으로 흘러들어가 미세 플라스틱이 돼 우리 몸으로 되돌아온다.


너무 많은 흡연자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담배꽁초를 길에 버린다. 플로거들이 경험한 꽁초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은데, 지인은 하수구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고 있는데도 지나가던 사람이 휙 버리고 갔다고도 하고, 또 어떤 흡연자는 꽁초를 줍는 플로거에게 '수고하십니다'라고 얘기하고도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기도 했다는 씁쓸한 사례도 있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꽁초를 주워가면 무게를 달아 보상금을 주는 제도도 있다(광주 광산구, 서울 강북구, 용산구 등).

플로깅을 지원하는 지자체들
 
 잠실 인근에서 삼삼오오 모여 플로깅하는 '뽕나무 클럽.' 도시에서 쓰레기를 줍다 보면 30분도 안 돼서 쓰레기 봉지가 가득 찬다.
잠실 인근에서 삼삼오오 모여 플로깅하는 '뽕나무 클럽.' 도시에서 쓰레기를 줍다 보면 30분도 안 돼서 쓰레기 봉지가 가득 찬다. 최지선
  
한번은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 국적 시민과 함께 플로깅을 했다. 그가 말하기를, '일본에서는 시민들이 쓰레기를 주워서 한곳에 모아두고 지자체에 신고하면 픽업하러 온다'는 것. 도시에서 15분만 쓰레기를 주워도 15리터 봉투가 가득 차기 일쑤인데, 지자체에서 픽업을 온다면,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들고 쓰레기통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또 지자체에서 쓰레기봉투도 지원해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얼마 전 한국의 지자체에서도 플로깅을 지원하는 조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울산광역시 플로깅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준비 중인 이미영 울산시의원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울산은 공업지구인 만큼 시민들이 환경에 대한 관심도 많다고 하는데, 몇 년 전부터 동네마다 플로깅하는 모임들이 생겨나고 활동하고 있단다. 이러한 활동을 지원할 순 없을까 고민하다가 시민들과 함께 플로깅 지원 조례를 만들게 됐다고.

해당 조례안에 따르면, 울산시장은 시민들의 플로깅 활동을 지원하고 장려할 수 있고, 또 관련 교육이나 홍보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조례에 기반해서 시 차원에서 담배꽁초 무단투기에 대한 캠페인도 벌일 수 있겠다. 최근 경기도에서도 '쓰레기 담으며 걷기 지원 조례'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플로깅 참여자에게 인증을 통해 인센티브를 줄 수도 있게 했다. 

심심한 감사
 
 얼마 전 들은 이미영 울신시의원의 '줍깅 조례 특강.'
얼마 전 들은 이미영 울신시의원의 '줍깅 조례 특강.' 최지선
 
물론 플로깅 활동은 지원해 마땅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애초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회용 쓰레기 자체를 줄이는 게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플로거들이 모인 단체인 '와이퍼스'에서 환경부장관에게 손편지를 썼는데, 많은 시민들이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 강화와 수거함 설치를 제안했다. 또 여름엔 일회용 컵들이 정말 많이 버려지는데, 컵 보증금 제도도 지자체나 정부 차원에서 도입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끝으로, 다른 사람이 버린 쓰레기일지라도 기꺼이 줍는 전국의 플로거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최지선은 2021년 송파라 보궐선거에서 미래당 구의원 후보로 출마하였고, 현재 송파에서 환경과 성평등 관련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줍깅 #플로깅 #쓰줍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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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파에서 시민 개개인이 주인이 되어 함께 잘사는 사회를 궁리하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ditto.2020 페이스북@jeeseu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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