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1공주만세운동 재현 행사당시 참여한 영명고 학생들.
영명고등학교
1919년 당시 공주군 내에서는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10개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공주읍의 경우 장날인 음력 3월 1일(양력 4월 1일) 영명학교 교사와 졸업생과 재학생이 주도로 성사됐다.
당시 참여 교사는 김관회, 김수철, 이규상, 현언동 등이었고 재학생은 양재순(공주시 최초의 양의사로 공제의원 개원), 유우석(유관순의 오빠), 강윤, 노명우, 윤봉근 등이었다. 졸업생도 7명이 함께 했다. 학생들은 수업 중인데도 뛰어나가 만세를 불렀다. 우리암 교장은 만세운동을 지원했다.
"영명학교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학교 등사기로 독립선언서 수천 매를 등사하고 태극기도 만들었어요. 시장에서 오후 2시가 되자 학생과 교사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선언서를 나눠준 거죠. 이 일로 8명이 현장에서 체포되고, 19명이 기소됐어요"
유관순 열사는 영명여학교 출신으로 인정된다. 연구자료에 의하면 유관순은 1916년 영명여학교 보통과 2학년을 마치고 이화학당으로 옮겼다. 당시 천안에 살고 있던 유관순을 영명학교로 인도한 것도 사애리시였고, 이화학당에 추천 입학하게 한 것도 사애리시였다. 졸업생 윤창석은 동경유학생 대표로 2.8 독립선언을 주도했다.
영명학교 학생들은 이후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동맹휴학을 벌였다. 같은 해 12월 7일 9개 항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전교생 100여 명이 동맹휴학에 참여했다. 요구 조건에는 '일본인 교사 배척과 조선 역사를 가르칠 교사 확보' 등이 들어있다. 이후 공주고등보통학교 등으로 확산했다. 이 일로 영명학교 황인식 교사와 주병건 교사가 학생 소요를 선동,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취조를 받았다.
1929년 동맹휴학 "일본인 교사 대신 조선 역사 교사 보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