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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과정에 발달장애인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죠"

[인터뷰] '쉬운 정보' 제작하고 알리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 백정연 대표

등록 2021.12.08 09:07수정 2021.12.0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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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 백정연 대표 ⓒ 김지현


15년간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발달장애인들과 동고동락했던 사회복지사 백정연. 발달장애인의 '알 권리'를 위해 '쉬운 정보'를 제작하고 알리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의 대표가 됐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적기업으로 모두를 위한 '쉬운 정보'를 제공한다.

'쉬운 정보'란 어려운 표현을 쉽게 바꾸고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더한 콘텐츠다. 발달장애인은 읽고 쓰는 게 원활하지 않아서 복잡한 정보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는 불평등한 일을 겪지 않도록, 주체적인 삶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콘텐츠다. 시각장애인은 점자로 글을 읽고 청각장애인은 수어로 소통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10월 22일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을 통해 백정연 대표를 인터뷰하고 이후 이메일을 통해 추가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쉬운 정보'는 사회적 관계 범위까지 확장하는 역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일반 문자를 쉬운 정보로 바꿨다. ⓒ 소소한소통

 
- 사업을 시작한 동기가 뭔가요?
"2015년 시행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앞두고 보건복지부로 파견 근무를 나갔어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법이니 누구보다도 당사자들의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법률 용어는 비장애인들도 많이 어려워하는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어렵겠어요. 이때 쉬운 정보 버전의 '반갑다 발달장애인법'을 기획했어요. 복지관 등 현장에 배포했을 때 반응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요. 법 조항에 대해 이해하고 질문하는 모습을 보고 '쉬운 정보'의 필요성을 실감했죠."

-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국내에선 '쉬운 정보' 사업이 활발한가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아요. 사업을 시작했던 2017년 당시, '소소한소통'이 국내에선 최초였어요. 현재는 인포그래픽이나 영상 콘텐츠를 많이 접하기는 하지만 '쉬운 정보'와는 조금 달라요. 소소한소통의 쉬운 정보는 발달장애인의 알 권리를 보장이 주된 목적이죠.

반면에, 외국엔 이미 오랜 역사가 있어요. 뉴질랜드는 20년 전부터 시작된 '퀄리티 체커(Quality Checker)'가 있어요. 정부 기관은 물론 민간기관까지 제작 가이드라인이 잘 잡혀있어요. 발달장애인이 쉬운 정보를 쉽고 자연스럽게 접하는 환경이 조성되다 보니 기관 차원에서 더 많이 제작하기도 하고요. 외국보다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죠."


- '쉬운 정보'를 만들 때 어디에 주안점을 두시나요?
"아무래도 최종 고객인 발달장애인 입장에서 봤을 때 정말 쉬울까가 가장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작 전 과정에 발달장애인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죠. 콘텐츠 주제 선정부터 마지막 감수 과정까지 자문위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요. 당사자들에게 실제로 쉬운지 확인하는 과정이에요.

- 최근 이슈 중 '쉬운 정보'가 가장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요?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보요. 비말감염, 잠복기, 음성/양성 등 이전엔 접하지 않았던 낯선 용어가 매우 많아요. 비장애인들에게도 마찬가지죠.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인데 정보가 없으면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없어요.

복지 서비스도 마찬가지예요.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보를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이해되지 않아 서비스 신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쉬운 정보'란 단순히 정보를 이해하는 것을 떠나 발달장애인이 직접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과정 중 하나예요."

- '쉬운 정보'를 접한 당사자들의 실제 반응은 어떤가요?
"'알게 돼서 기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알고 나니 실천하고 싶어지는 거죠. 실천하다 보니 다른 것도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지는 거고요. '쉬운 정보'는 이렇게 알 권리를 넘어 경험은 물론 사회적 관계 범위까지 확장하는 역할을 해요."

발달장애인에게 '아는 즐거움'과 '소통의 즐거움'   
 

지난 해, 보건복지부와 ‘장애인을 위한 코로나19 안내서’를 발간하여 코로나19 정보를 알기 쉽게 콘텐츠화했다. ⓒ 소소한소통

 
- 당사자들의 변화를 체감한 적이 있나요?
"사업 초반부터 지금까지 감수 작업을 하시는 자문위원들만 봐도 크게 실감해요. 사업을 시작하고 첫 모임 때는 의미 자체도 이해하시지 못했어요. 제 질문에 간단한 대답만 하시는 정도였죠. 지금은 굉장히 적극적이세요. 회의가 있는 날이 아니어도 개인적으로 연락해 먼저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하세요."

- 타 기업을 대상으로 제작 의뢰도 받으신다고요.
"저희 미션인 '발달장애인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사회 만들기'를 달성하기 위해선 자체 콘텐츠만으로는 부족해요. 많은 곳에서 저희를 찾을수록 '쉬운 정보'는 더 많이 만들어져 널리 퍼뜨릴 수 있죠. 많은 분이 알 권리를 보장받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 사람들이 편한 정보, 즉 쉬운 정보를 찾는 이유는 뭔가요?
"이젠 읽는 것보단 보는 것이 더 익숙한 시대죠. 그런 관점에서 긴 글이 아닌 간단하고 쉬운 문장과 그림을 더 찾으시는 것 같아요. 자체 콘텐츠 중 '이해하기 쉬운 근로계약서', '이해하기 쉬운 장례식장 예절'을 비롯해 선거 참여를 돕는 '선거를 부탁해'는 비장애인인 10대 후반에서 20대에게 호평을 받았어요. 체결, 부고, 기표 등 비장애인에게도 쉽지 않은 관련 용어와 나이가 적은 이들에겐 낯설 수밖에 없는 예절 등을 이해하기 쉬운 글과 이미지로 설명한 자료죠."

- 비장애인들도 '쉬운 정보'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네요.
"최종 고객은 발달장애인이지만 어린이, 외국인, 어르신 등 말과 글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도 필요해요. 이들을 제외한 모두에겐 '편한 정보'가 되는 것이고요. 발달장애인이 아닌 대국민을 대상으로 쉬운 정보 제작을 의뢰하시는 분들도 늘어나는 추세예요. 시대 변화에 따라 '편한 정보' 작업도 많아지겠지만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정보'를 우선으로 삼을 거예요."

- 앞으로 '소소한소통'의 발걸음이 궁금해요.
"발달장애인들이 궁금한 게 생겼을 때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쉬운 정보'로 설명해주는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고 싶어요. 어르신들의 치매와 우울증 예방을 위해 출시된 인공지능(AI) 돌봄 인지 인형 '효돌이'를 보고 떠올랐어요. 회사를 통해 궁금한 것을 여쭤보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AI 서비스가 있다면 저희 '소소한소통'을 거칠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답을 들을 수 있으니 소통하는 데도 훨씬 원활해질 수 있을 거예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정보' 외에도 '편한 정보'로써의 콘텐츠 제작 의뢰도 많이 받는다. ⓒ 소소한소통

 
일상의 소소한 순간까지 소통의 어려움이 없는 삶을 꿈꾸는 백정연 대표. 그가 말하는 소통은 전혀 화려하지 않다.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고 식사를 주문하는 것도,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도 모두 소통이다. 우리는 매 순간 많은 정보를 접하고 선택한다.

모든 순간에 모든 이들이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정연 대표는 지금 이 사회를 사는 발달장애인에게 '아는 즐거움'과 '소통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의 소통은 모두에게 동등한 사회가 될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소소한소통 #정보접근권 #알권리 #발달장애인 #쉬운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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