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이발 관련 물품들미용기(바리깡), 전용 빗, 미용 가위, 아기 이발 보가 보인다.
최원석
언제나 그랬듯 아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아기를 안았다. 나는 가위를 잡고 이발기를 준비했다. 지체를 하면 아기가 울어버릴 것이 자명하다는 것을 지난 경험으로 안다. 속전속결로, 아기에게 내가 결혼식 때 시술 받았던 언 밸런스 컷을 최소 10분 안에는 해줘야 한다. 그 이후로 넘어가면 아기 커트는 내년에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린다.
아기의 머리를 잘라주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본인 자신이 커트라는 것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기 '싫어 병'의 증상들 중에 커트 거부가 포함되는 이유다. 아기는 가만있으려 하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그러다 10분이 지나면 뒤로 발라당 누워 버리고 하기 싫다고 떼를 쓰고 울기 시작한다.
심호흡을 하고 아기의 머리를 잘랐다. 컨디션이 안 좋은지 아니면 오늘따라 디자이너의 손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번에는 유난히 아기가 보채서 커트를 하는 손이 다 떨리려고 할 정도였다. 가위를 들고 아기 머리를 자를 때는 조심해야 했다. 미용 가위는 다른 일반 가위보다 끝도 뾰족하고 날도 파르스름하게 날카롭기 때문이다.
다행히 하기 싫다고 아기가 떼를 쓰며 울기 전에 커트는 끝이 났다. 아내는 아기의 머리를 감겨주기 위해 황급히 아기를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전쟁 같은 뒤처리와 뒷정리는 자연스럽게 홈 헤어 디자이너의 몫이 되었다.
너무 정신이 없고 파란만장하게 난장판인 상황이라 커트를 하고 난 이후의 사진을 올리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집에서 아기를 커트하고 난 뒤의 상황은 상상 이상의 가관이라 생각하시면 딱 맞을 듯싶다.
아기가 엄마와 함께 머리를 감고 말려서 다시 거실로 나왔다. 아기의 모습을 보다 피식 미소가 나왔다. 닮을 것만 닮지, 으이그, 머리카락을 잘라 놓고 다시 보니 머리가 나는 방향과 머리가 갈색이며 반 곱슬인 점. 게다가 가마까지 닮았다. 아기가 커트를 마친 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가 실소를 터트렸던 이유다.